비트코인 개발자들이 불편한 제안을 내놨다. 양자컴퓨터의 위협에 대비해 취약한 구형 지갑을 동결하고 모든 사용자에게 새 주소로의 이전을 강제하자는 것이다.
듣기엔 합리적이다. 실행하면 파국이다.
2013년 이전에 생성된 지갑에는 약 170만 개의 비트코인이 잠들어 있다. 시드 구문이 존재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복구 방법이 없다. 동결하면 영원히 사라진다. 그 안에는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110만 개도 포함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2030년대 양자컴퓨터가 현실화될 때 해커들이 기존 암호 체계를 무력화하고 700만 개의 비트코인을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낼 수 있다. 비트코인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시나리오다.
선택지는 둘뿐이다. 170만 개를 스스로 봉인하든가, 700만 개를 해커에게 내주든가. 산술적으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럼에도 커뮤니티는 망설인다. 이유가 있다.
사토시의 지갑은 단순한 코인이 아니다. 그것은 비트코인이라는 실험의 기원이자 불문율의 상징이다. 어떤 권력도, 어떤 개발자 집단도 그것에 손댈 수 없다는 믿음이 비트코인의 정체성을 떠받쳐 왔다. 개발자들의 합의로 지갑을 동결한다는 것은 기술적 조치가 아니다. 탈중앙이라는 신화의 자기 부정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깊어진다. 사토시의 설계 철학은 중앙 권력의 개입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었다. 국가도, 은행도, 개발자도 규칙을 바꿀 수 없는 시스템. 그것이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개발자들이 지갑을 동결하고 이전을 강제하는 방안을 태연하게 논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비트코인은 이미 설계 당시의 모습에서 멀리 떠나왔다. 익명성은 사라졌다. 비트코인은 현존하는 금융 네트워크 중 가장 촘촘하게 추적되는 시스템이 됐다. 접근성도 무너졌다. KYC, 중앙화 거래소, 은행 인프라 종속이 일상이 됐다. 프라이버시를 표방하는 토큰들은 조직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됐다. 형식이 아닌 본질의 차원에서, 오늘의 비트코인과 사토시의 비트코인 사이에는 이미 여러 번의 하드포크가 존재한다.
거버넌스가 기술보다 어렵다.
비트코인의 하드포크 저항성은 단순한 관성이 아니다. 중립적이고 규칙 기반의 시스템이라는 신뢰를 지탱하는 핵심 속성이다. 사토시 지갑 동결을 담은 하드포크는 광범위한 커뮤니티 합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구조는 정확히 그런 합의를 이루기 어렵게 설계돼 있다. 스스로 만든 함정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변수다. 양자 위협이 현실화되기 전에 충분한 논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공포가 아닌 이성으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조건은 그것뿐이다. 논의가 늦어질수록 선택지는 줄고, 결정은 거칠어진다.
신화보다 생존이다.
비트코인은 지금 서사의 기로에 섰다. 사토시의 신화를 지킬 것인가, 네트워크의 생존을 택할 것인가. 구형 지갑에 손을 댄다는 것이 신성 모독처럼 느껴지는 감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감정은 양자컴퓨터를 막지 못한다. 양자 위협이 현실화되는 순간 시장 신뢰가 증발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집단적 유동성을 지키는 것뿐이다.
사토시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답이 아니다. 진짜 물음은 따로 있다. 사토시가 지금 나타난다 해도, 과연 누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비트코인이 스스로를 지키려면 신화를 내려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설령 창시자의 지갑을 영원히 봉인하는 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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