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블록체인 기반 예측시장 폴리마켓(Polymarket)에서 한국 정치 이벤트가 본격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26 서울시장 선거 승자' 시장의 누적 거래액은 약 3,367만 달러(약 460억 원)에 달했으며, 지난 4월 24일에는 '이재명 대통령 2026년 내 퇴진' 시장이 신규 개설됐다. 한국 정치의 향배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금융 자산으로 변환되고 있는 셈이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5월 2일 현재 서울시장 시장의 베팅 분포는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 87%,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14%로 집계됐다. 안철수, 한동훈, 조국, 나경원, 강훈식 등 13명의 다른 후보는 모두 1% 미만의 확률을 부여받았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 4월 9일 민주당 경선에서 박주민·전현희 의원을 꺾고 본선 후보로 확정됐고, 오세훈 시장은 4월 18일 국민의힘 후보로 지명된 바 있다.
시장 가격은 정치적 사건에 따라 실시간으로 요동쳤다. 4월 중순 JTBC 여론조사에서 정 후보가 50%, 오 시장이 34%로 나타나자 시장은 정 후보 우세로 기울었으며, 4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정원오 후보의 92.9% 구민 만족도를 공개적으로 칭찬한 직후 정 후보 확률은 84%에서 91%로 급등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 한 마디가 즉각적으로 자본의 가격으로 환산되는 구조다.
"예측시장이란 무엇인가"
폴리마켓은 사용자들이 미래 사건의 결과에 베팅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거래소다. '예(Yes)' 또는 '아니오(No)' 계약을 매매하는 방식이며, 가격이 곧 시장 참여자들이 집단적으로 평가한 확률이 된다. 정원오 후보의 'Yes' 가격이 87센트라는 것은 시장이 그의 당선 확률을 87%로 평가한다는 의미다. 사건이 실현되면 'Yes' 보유자는 1달러를 받고, 그렇지 않으면 0달러를 받는다.
이 모델의 본질은 진짜 돈이 걸려 있다는 점에 있다. 여론조사는 응답자에게 비용이 들지 않지만, 예측시장 참여자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면 직접적인 금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예측시장은 여론조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신호를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관련 학계의 일관된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3월 발표한 스테이블코인 연구는 미국 GENIUS Act의 통과 확률을 측정하기 위해 폴리마켓 데이터를 학술적 도구로 활용한 바 있다. 폴리마켓은 또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결정적 도약을 이뤘다. 주요 여론조사가 마지막까지 카멀라 해리스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박빙을 예측하는 동안, 폴리마켓은 일관되게 트럼프 후보의 우세를 가격에 반영했고 결과적으로 정확한 예측을 내놓았다.
한국 사회 역시 이미 한 차례 폴리마켓의 작동을 직접 경험했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직후 폴리마켓은 빠르게 탄핵 가능성을 높은 확률로 평가했고, 결과는 시장의 예측대로였다. 이번에 신설된 이재명 대통령 탄핵·하야 시장은 동일한 메커니즘이 현직 대통령을 향해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폭발적 성장과 미국 내 격렬한 논쟁
폴리마켓과 미국 내 경쟁 플랫폼 칼시(Kalshi)는 지난 1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칼시는 미국 내 시장 점유율 약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 시장에서는 폴리마켓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두 회사가 2025년 미국 연방 로비 활동에 지출한 금액만 100만 달러에 달한다. 양사 모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자문역으로 영입했으며, 폴리마켓은 워싱턴 D.C. 한복판에 'The Situation Room'이라는 이름의 사무실을 열었다.
그러나 성장과 함께 격렬한 논쟁이 시작됐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인사이더 트레이딩 문제와 도박 규제 문제다.
인사이더 트레이딩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미군 특수부대 마스터 상사 가논 켄 반 다이크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축출 군사작전에 직접 참여한 기밀 정보를 이용해 폴리마켓에서 약 41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혐의로 미 법무부에 의해 기소됐다. 그가 적발된 경위는 단순했다. 본인 이메일로 폴리마켓 계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폴리마켓 거래자 대다수는 암호화폐 지갑 뒤에 신원을 감추고 있어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사례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시간에는 익명의 폴리마켓 거래자가 바이든 전 대통령이 발표할 4건의 사면을 정확히 예측해 약 3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군사작전 관련 베팅에서도 의심스러운 시점에 이뤄진 거래가 다수 확인됐다. 미국 상원은 지난 4월 30일 만장일치로 상원의원의 예측시장 거래를 금지하는 규칙을 통과시켰으며, 칼시는 자체적으로 본인 선거에 베팅한 후보 3명을 적발해 벌금과 거래 정지 처분을 부과한 바 있다.
도박 규제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한 양상이다. 칼시 거래량의 약 90%, 폴리마켓의 약 38%가 스포츠 베팅으로 집계됐다. 미국 20개 이상의 주(州) 정부는 폴리마켓과 칼시를 '무허가 스포츠 도박' 사업자로 규정하고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으나, 양사는 자신들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관할의 '이벤트 계약(event contract)' 거래소이며 주의 도박 규제를 받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4월 미 연방 항소법원은 뉴저지주 규제당국이 칼시의 스포츠 베팅을 차단할 수 없다고 판결, 양사의 손을 들어줬다.
a16z의 개입… "예측시장은 가격발견 메커니즘"
이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실리콘밸리의 거물 벤처캐피털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가 칼시·폴리마켓 측에 가세했다. a16z는 지난 4월 CFTC에 18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하며, 주(州) 단위의 예측시장 규제가 "공정한 시장 접근에 대한 심각한 장벽"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a16z의 논리는 두 갈래로 구성된다. 첫째, 예측시장의 가격 시스템은 "독특한 형태의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메커니즘으로서 불확실한 사건에 대한 확률을 시장에 드러낸다는 것이다. 둘째, 블록체인 기반 예측시장은 온체인 거래의 감사 가능성 덕분에 기존 거래소보다 더 투명하다는 주장이다. CFTC 의장 마이크 셀리그는 예측시장의 이벤트 계약이 '스왑(swap)'에 해당해 CFTC의 "배타적 관할권" 안에 있다고 선언하고, 주 규제 당국 5곳을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반면 미 민주당 의원들은 정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4월 30일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이 주도한 민주당 의원 그룹은 CFTC에 서한을 보내 "선거, 전쟁, 군사 작전, 정부 행위에 대한 이벤트 계약을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Prediction Markets Are Gambling Act(예측시장은 도박이다 법)'와 'STOP Corrupt Bets Act(부패 베팅 차단법)' 같은 법안이 미 상·하원에 동시 상정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측시장 거래자들 자신이 평가한 '2026년 미국 내 스포츠 예측시장 연방 차원 금지 확률'이 1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시장은 자신을 향한 정치적 위협조차 가격에 매기고, 그 가격이 다시 정치적 결과의 신호가 되는 자기참조적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한국이 마주한 세 가지 질문
폴리마켓에 한국 정치 이벤트가 등장한 사건은 단순한 호기심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결과가 글로벌 자본의 베팅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서울시장 선거에 460억 원이 걸려 있고, 현직 대통령의 탄핵·하야 가능성에도 베팅이 시작됐다. 베팅 시장은 정치적 사건을 24시간 가격으로 평가하며, 그 가격은 다시 정치 분석과 미디어 보도의 참고점으로 환류된다.
폴리마켓의 인공지능(AI) 요약은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지속 가능성에 대해 '전시(戰時) 수준'의 경제 통제 발언, 대법관 26명 증원안, 비판 언론 규제 계획 등을 정치적 위험 요소로 거론하고 있다. 정확성 여부와 무관하게, 시장의 평가는 글로벌 자본 시장에서 한국이라는 자산의 위험 프리미엄(risk premium)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됐다.
이에 따라 한국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 질문 세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한국 정치가 외국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현상에 대한 규제 체계가 존재하는가. 둘째, 한국에서 이런 형태의 시장이 합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있는가. 한국의 자본시장법과 형법상 도박죄 규정은 블록체인 기반 이벤트 계약을 명확히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에서도 CFTC의 관할권 주장이 법원에서 검증받고 있는 초기 단계다.
셋째,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다. 정치적 결과를 시장이 가격 매기는 행위는 정상적인 정보 발견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사물화인가. 예측시장 이론을 정립한 경제학자 로빈 핸슨은 인사이더 트레이딩을 통해 숨겨진 정보를 드러내는 것이 시장의 핵심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정치적 결정과 그 정당성이 자본의 베팅 대상이 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된다고 반박한다.
폴리마켓은 한국 정치를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변환했다. 그 변환이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은 이미 한국 정치에 가격을 매기고 있다. 오는 6월 3일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한 도시의 행정 수반을 결정하는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글로벌 예측시장에서 약 460억 원 규모의 정산이 이뤄지는 금융 이벤트이기도 하다.
논의는 늦어도, 결과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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