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블록체인은 말이 아니라 실체로 증명해야 한다”…장도희 서울랩스 대표, 엑스피어로 현실을 잇다

| 권성민

“한국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그동안 많이 외면받은 건 사실입니다. 러그풀도 많았고, 스캔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이 아니라 실체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장도희 서울랩스 대표는 인터뷰 내내 ‘실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꺼냈다. 그의 블록체인은 백서 속 문장이 아니었다. 채굴기처럼 손에 잡히고, 대학생의 스마트폰 속 디지털 학생증처럼 눈에 보이며, 은행·가맹점·공공 서비스가 실제로 쓰는 인프라여야 했다.

서울랩스는 2023년 설립된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이다. 자체 메인넷 엑스피어(XPHERE)를 운영하며 AI 슈퍼월렛, 디지털 신원증명, 원화 스테이블코인 솔루션, 지역화폐 인프라 등 Web3의 실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가 한때 “미래를 바꾼다”고 말했지만, 장 대표는 이제 그 말을 증명해야 할 시간이라고 본다. 미래를 말하는 일보다, 지금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발자가 아니라 기획자였다

장 대표의 이력은 블록체인 업계에서 흔한 편이 아니다. 개발자 출신도, 채굴장 출신도, 코인 트레이더 출신도 아니다. 첫 직장은 하나투어였다. 해외사업기획팀에서 신성장 사업을 기획했고, 이후 제약업계 등 여러 산업을 거쳤다. 스스로를 “기획자 출신”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블록체인 업계에 들어온 것은 2020년이다. 첫 회사는 델리오였다. 당시 직원은 6명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비트코인을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ICO, 코인 버블, 러그풀 이야기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델리오는 달랐습니다. 메이저 코인을 예치받고 대출로 운용하는 구조였고, 예대마진이라는 수익 모델이 명확했습니다.”

그는 1년 만에 조직을 40명 규모로 키우는 데 관여했다. 운용자산도 3000억 원 수준까지 커졌다. 이후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돼 이동했고, 델리오 사태와 루나·FTX 충격을 업계 바깥에서 지켜봤다. 운이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경험은 장 대표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블록체인은 기술만으로 버티지 못한다. 사업 모델, 사용자, 제도권 접점이 함께 있어야 한다.

서울랩스의 출발도 처음부터 메인넷은 아니었다. 원래는 SASEUL 블록체인의 생태계 확장 파트너에 가까웠다. 이더리움에 컨센시스가 있었던 것처럼, SASEUL 생태계를 키우는 역할을 하려 했다. 그러나 기술적 오류와 한계를 목격하면서 방향을 틀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직접 만들자.”

그렇게 나온 것이 엑스피어(XPHERE)다.

토큰포스트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도희 서울랩스 대표가 엑스피어(XPHERE)의 기술 구조와 블록체인 실증 사업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토큰포스트)

PoW와 EVM, 낡은 것과 현실적인 것의 결합

엑스피어의 구조는 다소 독특하다. 보안성과 탈중앙성을 위한 작업증명(PoW) 체인, 그리고 개발자 접근성과 확장성을 위한 EVM 호환 체인을 함께 운영하는 이중체인 구조다.

장 대표는 이를 두고 “과거의 좋은 것은 계승하고, 나쁜 것은 버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의 작업증명 철학, 이더리움의 개발자 생태계, 이중체인의 확장성을 조합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과장하지는 않았다. “완벽한 트릴레마 극복은 아직 없다”고 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보안성, 확장성, 탈중앙성을 모두 완벽하게 잡았다고 말하는 순간, 대개 둘 중 하나다. 모르거나, 팔고 있거나.

장 대표는 대신 현실적인 선택을 강조했다.

“이더리움 생태계를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EVM 호환을 택한 건 기존 개발자들이 쉽게 넘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PoW가 가진 블록체인의 원형적 가치도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장의 반응이다. TOKEN2049 같은 대형 Web3 행사에서는 엑스피어가 특별히 튀지 않는다. 그러나 비트코인 아시아, 비트코인 2025 라스베이거스처럼 PoW 지지자들이 모이는 행사에서는 오히려 주목도가 높았다고 한다. 모두가 “PoW 시대는 갔다”고 말할 때, 그 반대편에는 여전히 “진짜 블록체인은 PoW”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랩스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서울랩스가 엑스피어(XPHERE) 네트워크를 위한 아이스리버(ICERIVER®)의 ASIC 마이너 ‘XP0’의 국내 수입 및 유통을 시작하고, 일반 구매자를 위한 실물 하드웨어 기반 호스팅 서비스 ‘XP FARM’을 동시에 출시했다고 밝혔다.

코이카 ODA에서 시작된 실증 무대

서울랩스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공적개발원조 영역에서 나왔다. 서울랩스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공적개발원조(ODA) CTS Seed 2 사업에 선정됐다. 장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술 기업으로는 코이카 ODA 사업 선정 첫 사례다.

사업 내용은 구체적이다. 현지 대학생들에게 엑스피어 기반 디지털 학생증을 발급하고, QR 출석 시스템을 구축한다. 여기에 재학증명서·졸업증명서·수료증·디지털 배지 발행 기능도 포함된다. 한국에서는 수년째 “블록체인으로 학사 행정을 바꾸자”고 말만 하던 일을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는 셈이다.

“한국에서 항상 얘기만 하던 블록체인 기반 학사 관리를 실제로 하는 겁니다.”

이 사업은 2년짜리다. 올해 4월부터 착수했고, 서울랩스 개발·기획·PM 인력이 현지 관계자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화려한 단어로 포장된 Web3 프로젝트는 많다. 그러나 학생이 출석할 때 QR을 찍고, 졸업증명서를 디지털로 받는 일은 훨씬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강하다. 실생활에 들어간 기술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슈퍼월렛, 지갑을 넘어 신용평가로 간다

서울랩스가 현재 가장 공을 들이는 서비스는 AI 기반 올인원 슈퍼월렛이다. 여기에는 DID 기반 신분증, 모바일 뱅킹 연동, 디지털 명함, 디지털 배지, 암호화폐 지갑, 지역화폐·스테이블코인 기능이 들어간다.

핵심은 AI 기반 하이브리드 대안신용평가다. 금융 데이터, 비금융 데이터, 위치 데이터 등을 AI가 분석해 신용 점수를 산출하는 구조다.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신흥국에서는 의미가 크다. 은행 계좌가 없거나, 신용평가 기록이 부족한 사람도 디지털 신원과 생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CES 현장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동남아에서 장기간 리스 사업을 해온 모 금융그룹 관계자가 서울랩스 부스를 찾아왔다. 현지에서는 신원 인증과 신용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아 리스 사업 확장이 어렵다고 했다. 서울랩스의 슈퍼월렛은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었다.

“신원 인증은 DID로 하고, 신용평가는 슈퍼월렛 안의 데이터를 AI가 분석합니다. 신흥국에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결국 신용 점수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민감한 문제도 있다. 위치 데이터와 금융 데이터를 신용평가에 활용하는 모델은 개인정보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장 대표는 본인 동의를 전제로 한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과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는 말은 다르다. 서울랩스가 이 시장에서 커지려면, 기술 못지않게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거버넌스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다.

현재 서울랩스는 국내 금융사들과 PoC 협의를 진행 중이다. CES 혁신상도 신청했다. 무대는 한국만이 아니라 라오스, 태국, 대만, 홍콩 등 동남아·중화권으로 넓어지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KWAN’, 승부처는 가맹점이다

서울랩스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 ‘KWAN’도 출원했다. 기획은 5년 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클레이튼 기반으로 구상했지만, 지금은 엑스피어 위에 올리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장 대표는 자신을 “규제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국내 발행이 어려운 시기에는 해외 발행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그는 규제 안에서 때를 기다렸다고 했다.

“저는 규제 안에서 하는 주의자입니다. 때를 기다렸고, 이제 그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가 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용도는 크게 두 가지다. 송금과 지불결제다. 송금은 해외 거래소 상장과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지불결제는 오프라인 가맹망이 승부처다.

장 대표가 주목하는 것은 지역화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기 전에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로 오프라인 가맹망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지역화폐는 이미 합법적 틀이 존재하고, 기술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과 유사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발행 주체와 운영 방식이 다를 뿐, 사용자 경험과 결제망 구축의 본질은 닮아 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스테이블코인이 허용된 뒤에 가맹점을 모으기 시작하면 늦다. 미리 지역화폐로 길을 깔아두면, 나중에 스테이블코인이 들어올 때 전환 비용이 줄어든다. Web3 업계가 흔히 놓치는 ‘현장 영업’의 문제를 장 대표는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스핀오프 3개, 기획자의 방식

서울랩스는 설립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3개 기업을 스핀오프했다. RWA 사업 법인, 호텔 아트페어 법인, 글로벌 유저 50만 명을 보유한 K팝 팬덤 플랫폼 ‘트윙풀’이다. 트윙풀은 엑스피어 기반 Web3 전환을 추진 중이며, 하반기 토큰 발행도 계획하고 있다.

장 대표는 이 대목에서 기획자 출신의 강점을 강조했다.

“개발자 출신 대표들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기술만 보니까요. 블록체인은 킬러 콘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태계도 살고 가격도 따라옵니다.”

냉정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블록체인 업계에는 좋은 기술을 만들면 사람들이 알아서 온다는 착각이 오래 있었다. 그러나 사용자는 기술을 쓰러 오지 않는다. 재미, 편의, 돈, 신뢰, 필요 때문에 온다. 블록체인은 그 뒤에 숨어 있어야 한다. 장 대표가 슈퍼월렛, K팝 팬덤, 지역화폐, 디지털 학생증을 동시에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메인넷을 팔려는 것이 아니라, 메인넷이 쓰일 이유를 만들려 한다.

“올 한 해 지켜봐 달라”

인터뷰 말미에 장 대표는 한국 블록체인 커뮤니티를 향해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 프로젝트에 대한 경계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저도 이 업계에 7년째 있다 보니 왜 그런지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ODA 사업, 채굴기, 지역화폐처럼 실체가 있는 것들로 증명해나가고 싶습니다. 국내 금융사들과 협업해 엑스피어를 증명하겠습니다. 올 한 해는 지켜봐 주십시오.”

서울랩스의 직원은 24명이다. 이 중 개발자는 7명이다. 대기업도 아니고, 글로벌 메이저 체인도 아니다. 그런데 벌여놓은 판은 작지 않다. 동남아 슈퍼월렛, 원화 스테이블코인, 지역화폐, K팝 팬덤, RWA, 채굴기까지 이어진다. 너무 넓어 보인다는 우려도 당연히 있다. 작은 조직이 감당하기에는 전선이 많다.

그러나 장 대표의 방식은 분명하다. 블록체인을 블록체인 업계 안에만 가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학 행정, 신용평가, 결제망, 팬덤, 지역화폐 같은 현실의 문제로 끌고 나오겠다는 것이다.

한때 블록체인 업계는 “탈중앙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많은 경우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투자자 계좌만 바뀌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더 작은 증거다. 디지털 학생증 하나, 오토바이 리스 이용자의 신용평가 하나, 동네 가맹점의 결제 단말기 하나.

장도희 대표가 말한 ‘실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블록체인이 살아남으려면, 더 이상 허공에 떠 있어서는 안 된다. 땅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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