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일본 도쿄 더 프린스 파크타워에서 열린 ‘WebX 2026’.
메인 무대인 CRYL 스테이지에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을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끌고 있는 네 명의 인사가 모였다.
RWA 데이터 분석 플랫폼 RWA.xyz의 에밀리 파커 전략고문,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의 체탄 카르카니스 수석부사장, 온도파이낸스의 민 린 글로벌 사업개발 총괄, 디지털자산 전문 투자사 판테라캐피털의 프랭클린 비 제너럴파트너다. 진행은 블룸버그의 앨리스 프렌치 기자가 맡았다.
세션 제목은 ‘토큰화된 RWA: 주식·채권·원자재·머니마켓펀드의 미래’였다. 서로 다른 사업 영역을 가진 패널들이었지만, 이날 논의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만으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토큰화의 진짜 승부는 발행 이후에 시작된다.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유동성, 실제 자산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상환 구조, 법적 권리,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규제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식 일정상 이 세션은 이날 낮 12시45분부터 40분간 진행됐다.
토큰화는 포장지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주식이나 채권을 토큰으로 만든다는 설명은 얼핏 단순하다.
기존 자산을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증표로 바꾸고, 이를 지갑 사이에서 전송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이날 패널들이 말한 토큰화는 기존 증권에 디지털 포장지를 씌우는 수준이 아니었다.
핵심은 자산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전통 금융에서는 거래 체결과 소유권 이전, 대금 결제, 장부 기록이 각각 다른 시스템에서 이뤄진다. 거래소가 문을 닫으면 거래가 멈추고, 실제 결제가 완료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국가와 금융기관이 달라지면 수탁기관과 청산기관, 외환결제망을 추가로 거쳐야 한다.
자산이 블록체인 위로 올라오면 거래와 결제, 소유권 기록을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연결할 수 있다. 스마트계약을 이용해 조건부 거래를 실행하고, 스테이블코인과 동시에 교환하며, 담보로 재사용하는 구조도 가능해진다.
토큰화의 가치는 자산을 더 작게 나누는 데만 있지 않다.
거래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자산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확장하는 데 있다.
머니마켓펀드가 가장 먼저 움직인 이유
토큰화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영역 가운데 하나는 머니마켓펀드(MMF)다.
이유는 명확하다. MMF는 단기 국채와 현금성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제공하면서도 현금과 비슷하게 활용할 수 있다. 변동성이 큰 디지털자산을 보유하지 않더라도 블록체인 지갑 안에서 이자 수익을 얻고, 필요할 때 거래 자금이나 담보로 사용할 수 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이 분야의 대표적인 전통 금융회사다.
프랭클린 온체인 미국정부 머니펀드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거래 처리와 지분 소유권 기록에 활용한 최초의 미국 등록 머니마켓펀드다. 회사는 ‘벤지(Benji)’ 플랫폼을 통해 개인과 기관이 토큰화된 펀드 지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개인 간 지분 이전과 하루 중 발생한 수익을 반영하는 기능도 도입했다.
카르카니스 수석부사장의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이 펀드의 기초자산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미국 국채는 여전히 미국 국채이고, 펀드 운용과 규제도 기존 금융의 틀 안에서 이뤄진다. 달라지는 것은 투자자가 펀드 지분을 보유하고 이전하며 활용하는 방식이다.
토큰화된 MMF는 단순한 투자상품을 넘어 온체인 시장의 ‘이자가 붙는 현금’으로 발전할 수 있다. 기업의 유휴자금과 기관투자자의 담보, 디지털자산 거래의 결제 준비금을 하나의 상품이 연결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현금이라면 토큰화 MMF는 수익을 내는 디지털 현금성 자산에 가깝다.
온도 “주식 유동성을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온도파이낸스는 주식과 채권 등 전통 자산을 온체인 투자자에게 연결하는 방향에 집중하고 있다.
온도는 미국 외 지역 투자자들이 미국 상장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온체인 익스포저를 얻을 수 있도록 ‘온도 스톡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통시장과 연결된 발행·상환 구조를 통해 기존 주식시장의 유동성을 토큰 시장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다.
이날 패널에서 반복된 중요한 질문은 “토큰화된 주식의 유동성을 어디에서 가져올 것인가”였다.
새로운 토큰을 발행한다고 해서 곧바로 매수자와 매도자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거래량이 부족하면 토큰 가격이 실제 주식과 벌어질 수 있고, 시장 충격이 발생했을 때 액면가나 기초자산 가치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온도가 택한 해법은 전통 금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것이다.
온체인에서 토큰을 발행하되, 발행과 상환 과정을 기존 시장의 유동성과 이어 가격 차이를 줄인다. 이용자는 블록체인 지갑에서 자산을 보유하고 이동할 수 있지만 가격 형성과 기초 유동성은 기존 증권시장의 깊이를 활용한다.
이는 토큰화가 기존 거래소를 곧바로 대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분간 전통 거래소와 온체인 시장은 경쟁하면서도 서로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시장이 가격과 유동성을 제공하고, 블록체인이 글로벌 접근성과 빠른 결제, 프로그래밍 기능을 추가하는 구조다.
‘토큰’보다 중요한 것은 상환권이다
토큰화 자산은 겉보기에는 모두 비슷하다.
지갑에 표시되고, 블록체인 탐색기에서 거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주소로 이전할 수 있다. 그러나 토큰 보유자가 실제로 어떤 권리를 갖는지는 상품마다 크게 다르다.
일부 토큰은 기초자산에 대한 직접적인 법적 권리를 제공한다. 다른 상품은 발행사에 대한 계약상 청구권이나 가격 연동만 제공할 수 있다. 특정 국가 이용자는 상환할 수 있지만 다른 국가 이용자는 거래만 가능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토큰의 이름이나 블록체인이 아니다.
실제 자산은 누가 보관하는지, 발행사가 파산할 경우 자산이 분리되는지, 언제 어떤 조건으로 상환할 수 있는지, 수수료와 거래 제한이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RWA.xyz가 시장에서 역할을 넓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RWA.xyz는 서로 다른 블록체인과 토큰 표준, 자산군에 흩어진 정보를 수집해 발행자와 기초자산, 수익률, 상환 조건, 수수료 등을 비교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있다. 토큰화 시장이 커질수록 단순한 시세보다 상품 구조를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퍼블릭 블록체인이 거래 내역을 공개한다고 해서 투자상품의 모든 위험이 투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장부는 공개돼도 계약은 여전히 복잡하다.
판테라가 보는 다음 투자처…발행사가 아니라 인프라
판테라캐피털의 프랭클린 비 제너럴파트너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토큰화 시장을 바라봤다.
그가 강조한 방향은 특정 자산 하나가 아니라 시장을 작동시키는 전체 구조였다.
토큰화 플랫폼이 늘어날수록 수탁과 신원확인, 데이터, 유동성, 상환, 크로스체인 연결에 대한 수요도 함께 커진다. 토큰을 직접 발행하는 회사뿐 아니라 여러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를 연결하는 인프라가 장기적으로 더 큰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닷컴 시대에도 웹사이트를 만든 모든 기업이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검색과 결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처럼 수많은 서비스가 공통으로 사용한 기반시설이 결국 거대한 산업이 됐다.
RWA 시장도 비슷할 수 있다.
주식과 채권, 펀드, 원자재를 토큰화하는 사업자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발행된 자산을 검증하고 거래하고 담보로 활용하며 다른 네트워크로 옮길 수 있는 공통 인프라는 소수의 사업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토큰화 경쟁의 승자는 토큰을 가장 많이 발행한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가 발행한 토큰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회사가 될 수 있다.
주식·채권·원자재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실물자산이 똑같은 방식으로 토큰화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채와 MMF는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제도적 구조가 명확해 온체인 시장에 먼저 들어왔다. 주식은 기존 거래소의 풍부한 유동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의결권과 배당, 기업행사, 국가별 증권 규제를 처리해야 한다.
회사채와 비상장채권은 거래 빈도가 낮고 가격 정보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토큰화로 발행과 결제 비용을 줄일 수는 있지만 매수자가 없다면 유동성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금과 원유 같은 원자재는 보관과 품질 검증, 운송, 보험이라는 물리적 과정이 뒤따른다. 디지털 토큰이 즉시 이동하더라도 창고에 있는 실물자산의 상태까지 자동으로 검증되는 것은 아니다.
이날 패널이 보여준 것도 토큰화가 하나의 기술로 모든 자산시장을 단숨에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각 자산군의 기존 구조와 규제를 이해하고, 블록체인이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부터 연결해야 한다.
기술이 자산의 성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성격에 맞는 기술과 법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전통 금융과 DeFi의 경계가 흐려진다
토큰화된 자산의 가장 큰 잠재력은 단순히 지갑에서 보유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다.
다른 온체인 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토큰화된 국채나 MMF를 담보로 맡기고 스테이블코인을 빌리거나, 증권 거래의 결제 자산으로 사용하고, 스마트계약을 통해 기업 자금을 자동 관리하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온도파이낸스의 OUSG는 적격투자자가 단기 미국 국채와 MMF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24시간 발행과 상환 기능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전통 금융과 탈중앙금융(DeFi)의 경계는 흐려진다.
기초자산과 운용, 규제는 전통 금융이 담당하고, 유통과 담보 활용, 자동화는 블록체인 인프라가 담당하는 혼합형 시장이 만들어진다.
미래의 금융은 월가와 DeFi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는 형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월가의 자산이 온체인으로 들어오고, DeFi의 기술이 전통 금융상품 안으로 스며드는 방식에 가깝다.
한국, ‘무엇을 토큰화할까’보다 ‘어디서 거래할까’를 물어야
이날 패널은 토큰증권(STO)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추진하는 한국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의 토큰화 논의는 여전히 발행 허용에 집중돼 있다.
부동산과 미술품, 저작권, 채권 가운데 어떤 자산을 토큰으로 만들 것인지, 어느 사업자에게 라이선스를 줄 것인지가 논쟁의 중심이다.
그러나 발행은 시장의 출발점일 뿐이다.
발행된 토큰을 누가 사고팔 것인지, 언제 상환할 수 있는지,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은행 예금이나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어떻게 결제할 것인지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토큰화 자산은 또 하나의 비유동성 상품에 머문다.
특히 토큰증권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별개의 법안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자산을 토큰화했다면 이를 실시간으로 결제할 온체인 원화가 필요하다. 반대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었다면 결제와 송금 외에 이를 활용할 채권과 펀드, 주식 등 디지털 자산시장이 있어야 한다.
자산과 돈이 같은 레일 위에서 움직일 때 토큰화의 효율이 발생한다.
한국이 만들어야 할 것은 토큰 하나가 아니다.
발행과 유통, 수탁, 데이터, 신원확인, 결제, 상환을 하나로 연결한 온체인 자본시장이다.
토큰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14일 WebX 2026 무대에서 확인된 것은 RWA가 더 이상 개념 증명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프랭클린템플턴과 같은 전통 자산운용사는 이미 퍼블릭 블록체인을 펀드 장부에 활용하고 있다. 온도는 국채와 MMF를 넘어 미국 주식과 ETF를 온체인 시장에 연결하고 있다. RWA.xyz는 흩어진 상품 정보를 표준화하고, 판테라는 이 시장을 떠받칠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패널들이 그린 미래는 무조건적인 낙관론과는 거리가 있었다.
토큰화는 비유동 자산을 자동으로 유동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블록체인이 부실한 자산을 우량자산으로 바꾸지도 않는다. 법적 권리가 불분명하고 상환이 어렵다면 디지털 토큰은 기존 종이증서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토큰화의 성공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 설계에서 결정된다.
좋은 자산과 안정적인 상환 구조, 충분한 유동성, 정확한 데이터, 명확한 규제가 함께 있어야 한다.
주식과 채권, 원자재, 펀드가 블록체인 위에 올라오는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토큰으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그 토큰을 누가 신뢰하고, 어디에서 거래하며, 언제 실제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가.
월가의 다음 경쟁은 발행량이 아니라 유통망에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