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이 거래 담보를 넘어 결제·정산·자금관리 인프라로 확장되면서 글로벌 은행권도 디지털 달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의 토마스 프로프스트 연구원은 2026년 8월 19일 보고서를 통해 은행 공동망의 등장에도 테더(USDT)와 USD코인(USDC)이 확보한 유동성, 유통망, 연동 체계가 강력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는 미국 지급결제기관 The Clearing House를 통해 토큰화 예금의 공동 청산·정산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목표 가동 시점은 2027년 상반기다. 2026년 6월 30일 공개된 Open USD 컨소시엄에도 비자, 마스터카드, 블랙록, BBVA, US뱅크 등 150개가 넘는 기관이 참여했다. 은행들은 예금 기반을 지키는 동시에 차세대 결제망의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토큰화 예금과 스테이블코인은 법적 구조부터 다르다. 토큰화 예금은 발행 은행에 대한 청구권으로 은행의 대차대조표와 기존 고객 관계에 기반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은 발행사의 준비자산 건전성, 상환 능력, 유통시장의 유동성에 좌우된다. 은행권은 규제 준수와 보고 체계를 유지하면서 기업 간 송금, 국경 간 결제, 자동화된 자금관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시장 규모는 은행이 대응을 서두르는 배경을 보여준다.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두 배로 증가해 2025년 말 30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26년 8월 기준 테더(USDT)는 약 1820억달러, USD코인(USDC)은 약 670억달러 규모다. 두 자산은 주요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의 94%를 차지해 신규 사업자가 기술만으로 따라잡기 어려운 시장 구조를 형성했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는 실질적인 진입장벽으로 ‘유동성’을 지목했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평균 1% 마켓 뎁스는 테더(USDT)가 약 두 배, USD코인(USDC)이 일곱 배로 확대됐다. 특히 USDC는 2025년 USDT를 추월한 뒤 더 높은 마켓 뎁스를 유지했다. 대규모 주문을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거래 환경과 디지털 자산 생태계 전반의 연동 체계가 양대 스테이블코인의 핵심 방어선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높은 시장 점유율이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USDT 시가총액은 2026년 5월 약 1900억달러에서 8월 약 1820억달러로 4%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USDC는 약 780억달러에서 670억달러로 14% 감소했다. USDT의 일일 거래량도 연초 70억~80억달러에서 8월 20억~30억달러로 축소됐고, USDC는 13억~20억달러 수준에서 약 4억달러로 내려왔다.
이 같은 위축은 은행이 기존 사업자의 점유율을 빼앗은 결과라기보다 암호화폐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2026년 들어 비트코인(BTC)은 약 27% 하락했고 주요 알트코인은 35~55% 떨어졌다. 발행사들이 결제와 정산 활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여전히 디지털 자산 가격과 거래 주기에 강하게 연동돼 있다는 의미다.
반면 토큰화된 실물연계자산(RWA)은 다른 흐름을 보였다. RWA 총가치는 2024년 초 10억~20억달러에서 2026년 8월 약 400억달러로 증가했다. 암호화폐 가격과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이 하락한 시기에도 성장세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기관 금융회사의 관심이 단순 투자 상품보다 기존 업무와 정산 구조를 혁신하는 도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The Clearing House의 공동망은 아직 발표 단계의 구상이라는 한계도 있다. 은행마다 발행한 토큰화 예금을 자유롭게 교환하려면 공통 기술 표준과 정산 규칙, 회원사 간 신용위험 처리 체계가 필요하다. 상호운용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개별 은행이나 그룹이 자체 토큰을 내놓으면 유동성이 여러 갈래로 분산되고 이용자가 발행 은행별 위험을 따로 확인해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단기적으로 테더(USDT)와 USD코인(USDC)의 우위는 흔들리기 어렵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는 양대 스테이블코인이 축적한 유동성과 촘촘한 네트워크를 은행 컨소시엄이 단기간에 넘어설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쟁 무대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결제망과 토큰화 자산 정산으로 옮겨가면 기존 고객망과 규제 인프라를 보유한 은행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향후 시장의 승부처는 새로운 코인의 발행 자체보다 ‘상호운용성’과 실제 사용처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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