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분석] 미국은 국채를 블록체인에 올린다…한국 STO, ‘조각투자’ 다음이 중요하다

| 권성민

‘토큰증권’이라고 하면 아직도 부동산 한 채나 미술품 한 점을 잘게 쪼개 여러 사람이 투자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토큰화는 조금 다르다.

월가가 블록체인 위로 옮기려는 것은 희귀 미술품이나 부동산만이 아니다. 국채와 머니마켓펀드(MMF), ETF, 상장주식 같은 기존 금융시장의 핵심 자산이다.

왜 하필 국채일까.

국채는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은 국채를 유동성 자산으로 보유한다. 금융회사들은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빌려준다. 국채 금리는 회사채, 주택담보대출 등 수많은 금융상품의 가격을 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미 SEC도 약 29조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시장을 글로벌 금융 안정의 ‘초석’이라고 표현했다.

국채가 정말 위험이 전혀 없는 자산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현대 금융시장이 국채를 사실상 공통의 기준 자산과 담보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국채를 토큰화한다는 것은 새로운 코인 하나를 만드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금융시장의 기초 설비를 건드리는 일이다.

국채가 움직이면 금융도 움직인다

토큰화의 개념부터 쉽게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팔면 실제 거래 뒤에서는 여러 기관의 전산망이 움직인다. 누가 샀는지 기록하고, 증권을 넘기고, 돈을 지급하고, 최종적으로 소유권을 바꾸는 과정이 각각의 시스템에서 처리된다.

토큰화는 이 증권의 소유 기록을 블록체인 같은 디지털 장부에 올리는 것이다.

목적은 단순히 주식이나 채권을 ‘코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증권과 돈을 더 가까이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채를 블록체인에서 보유하고 그것을 곧바로 담보로 맡긴 뒤 돈을 빌릴 수 있다면 어떨까. 거래가 끝나는 동시에 국채와 대금이 함께 이동하고, 다시 그 국채를 다른 거래의 담보로 사용할 수 있다면 금융기관이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미국의 토큰화는 이미 실험 단계를 넘어 기존 금융시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프랭클린템플턴은 2021년 미국 정부 MMF인 FOBXX를 출시하면서 퍼블릭 블록체인을 공식 거래·주주 기록 시스템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BENJI’ 토큰 한 개가 펀드 한 주를 나타내는 구조다.

더 중요한 변화는 미국 금융 인프라의 중심인 DTCC에서 나오고 있다.

DTCC는 지난 7월 실제 DTC 보관 증권을 토큰으로 전환해 실거래를 처리했다. 오는 10월 토큰화 서비스의 상용화를 계획하고 있다. 초기 대상에는 미국 국채뿐 아니라 러셀1000 종목과 주요 ETF도 포함될 수 있다.

즉 미국의 토큰화는 이제 ‘어떤 재미있는 자산을 블록체인에 올릴까’의 단계가 아니다.

기존 금융시장을 블록체인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도 방향을 바꿨다

한국도 중요한 전환점에 들어섰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4일 발표한 토큰증권 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토큰화 대상을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2027년 2월 제도가 시행되면 우선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MMF와 사모사채가 토큰화 대상이 된다. 비상장주식도 신탁을 통해 토큰화한다. 공모 조각투자증권도 허용한다.

이후 시장 상황과 기술 안정성을 보면서 공모증권으로 확대하고, 최종 단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등을 이용해 증권과 돈을 블록체인 위에서 함께 결제하는 구조까지 추진한다.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상장주식 토큰화 시범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STO 시장의 관심은 부동산, 미술품, 음원 등에 집중돼 있었다.

이제는 방향이 달라졌다.

조각투자 시장을 만드는 데서 자본시장 자체를 디지털화하는 쪽으로 한 걸음 이동한 것이다.

이 차이는 크다.

100억원짜리 건물 하나를 1만개 토큰으로 나누는 것은 새로운 투자상품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채권과 펀드, 주식의 발행과 거래 방식을 블록체인으로 바꾸는 것은 시장 인프라를 바꾸는 일이다.

한국이 의외로 과감한 부분도 있다

한국이 무조건 미국보다 늦다고 볼 필요도 없다.

제도적으로는 오히려 상당히 과감한 부분이 있다.

한국의 토큰증권에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분산원장 자체가 증권계좌부 역할을 한다. 예탁결제원과 증권사 등이 같은 분산원장에 증권의 발행과 유통 정보를 함께 기록·관리하는 구조다.

쉽게 말하면 블록체인에 적힌 기록이 단순한 ‘참고용 복사본’이 아니라 실제 증권의 권리를 관리하는 장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DTCC의 현재 모델은 DTC가 보관하는 기존 증권을 토큰화해 디지털 시장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한국은 분산원장 자체를 제도권 증권 장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틀을 마련했다는 차이가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부는 만들었는데 장부와 장부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철도는 깔았는데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를 철도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A증권사가 블록체인 철도를 하나 깔고, B증권사가 다른 철도를 깔았다고 해보자.

각 철도에서는 기차가 잘 달린다.

그런데 두 철도의 선로가 연결돼 있지 않아 A에서 출발한 기차가 B로 갈 수 없다면 전국 철도망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현재 예탁결제원의 분산원장 표준요건 가이드라인에는 하나의 증권을 하나의 분산원장에서 발행·유통하고, 발행 뒤 다른 분산원장으로 이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이 담겨 있다. 아직 시행령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며 이달 말 하위법규 입법예고와 의견수렴이 예정돼 있다.

감독당국이 처음부터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금융시장은 한번 사고가 나면 피해 규모가 크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기술에서도 과거 대형 해킹이 발생했다. 수조원의 증권을 다루는 시장에서 안전성을 먼저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처음에 문을 닫고 시작하는 것과 계속 닫아두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금융위 자신도 마지막 단계인 온체인 결제를 구현하려면 토큰증권이 있는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이 있는 블록체인을 서로 연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한 상호운용 기술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언젠가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미국과 한국, 무엇이 다른가

한미의 상황을 단순히 ‘미국은 앞서고 한국은 뒤처졌다’고 보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미국은 기존 금융제도를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국채와 MMF, ETF, 주식처럼 이미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는 자산을 빠르게 블록체인과 연결하고 있다.

한국은 토큰증권을 위한 법적 장부와 제도를 먼저 만들고, 위험이 낮은 자산부터 단계적으로 시장을 열겠다는 접근이다.

미국은 시장에서 먼저 움직이고 있고, 한국은 제도에서 먼저 길을 닦고 있는 셈이다.

어느 방식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토큰화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하다.

토큰을 몇 개 발행했느냐가 아니다.

기존 금융보다 더 싸고, 빠르고, 편리하게 자산이 움직일 수 있느냐다.

한국도 결국 국채·ETF까지 가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다음 목표도 분명해진다.

사모 MMF와 사모사채는 좋은 출발점이다. 먼저 기관시장에서 안정성을 검증하는 것도 합리적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국채와 통안채, 공모채권, ETF와 같은 시장의 핵심 자산으로 토큰화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국채는 중요하다.

국채 하나를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국채를 다른 금융기관에 넘기고,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빌리고, 다시 거래하는 과정까지 디지털 장부 안에서 연결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부터 블록체인은 투자상품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금융시장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 된다.

미국이 보여주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토큰화의 다음 경쟁은 ‘무엇을 쪼갤 것인가’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주식과 채권, 펀드와 국채, 그리고 돈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느냐에서 벌어진다.

한국은 이제 문을 열었다.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로 넘어가는 방향도 맞다. 분산원장을 법적 증권 장부로 인정한 것도 의미가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연결이다.

철도를 깔았으면 결국 선로가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STO는 ‘블록체인을 사용한 새로운 전자증권’에 머물 수 있다.

반대로 안전한 연결과 결제 구조까지 만들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이 만들게 되는 것은 STO 시장 하나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자본시장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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