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산 석유 제재 완화 조치를 한 달 더 연장한 배경에는 국제 유가를 낮춰 달라는 주요 20개국의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19일 CNN 인터뷰에서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의 거래를 추가로 허용하기로 방침을 바꾼 이유를 설명하며,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에너지 가격 안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열린 주요 20개국 회의에서 각국이 고유가 부담을 호소했고, 미국이 이에 대해 일시적 대응에 나섰다고 말했다. 라이트 장관이 언급한 회의는 지난 16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며칠 사이 입장을 뒤집으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15일, 11일로 끝난 1개월짜리 러시아산 원유 제재 유예를 더는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미국 재무부는 불과 이틀 뒤인 17일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 판매를 다시 한 달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재무부는 앞서 지난달 12일에도 제재 대상이던 러시아산 원유 판매를 30일간 허용한 바 있는데, 당시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흔들린 세계 에너지 시장의 공급 부족을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라이트 장관은 현재 러시아산 원유가 사실상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는 흐름을 거론하며, 이를 중국으로만 흘러가게 두기보다 아시아 다른 지역의 정유시설로도 향하게 해 아시아와 유럽의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 이번 조치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런 완화 조치가 영구적이지는 않다며, 미국의 대러시아 석유 제재는 결국 다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번 결정이 외교 노선의 근본 변화라기보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 조정이라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런 제재 완화가 다른 정치·외교적 부담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일부 허용하면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이나 이란 지원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비판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제재의 압박 효과와 국제 유가 안정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현실적인 균형점을 찾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 시장에서는 공급이 조금만 흔들려도 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에, 제재 정책도 순수한 외교 수단을 넘어 물가와 금융시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제 변수로 작동한다.
라이트 장관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에 대해서는 정점은 지난 것으로 보이지만, 전쟁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올해 2월만 해도 갤런당 2.9달러대였으나,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40% 넘게 뛰어 현재는 갤런당 4.1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그는 갤런당 3달러 이하로 다시 낮아지는 시점을 두고 올해 말이 될 수도 있고 내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향후 국제 유가 흐름은 중동 지역 분쟁의 전개, 러시아산 원유 제재의 재강화 시점, 주요국의 물가 안정 요구가 어떻게 맞물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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