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14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 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국내 증권가는 이번 회담의 핵심 변수로 인공지능과 반도체 협상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일부라도 완화하면 그동안 미·중 갈등의 반사이익을 누려온 국내 메모리 업계와 증시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회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룰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중국을 상대로 첨단 반도체와 장비 수출을 제한해 왔다. 이에 맞서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같은 대응 카드를 꺼내며 맞섰다. 시장은 이런 대치가 장기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최근 미국 내 메모리 공급 부족 우려와 정치 일정 등을 고려하면 미국이 협상 과정에서 일부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증권가가 특히 민감하게 보는 대목은, 미국의 규제 완화가 중국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회담 결과가 일단 기존 협상 국면을 유지하는 수준의 상징적 성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서도, 중국이 희토류 공급이라는 협상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수출 규제 완화라는 양보를 더 끌어낼 수 있다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태경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미국이 일부 반도체 설비 규제를 완화하고 중국이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을 약속하는 식의 절충이 이뤄진다면 양국 모두 정치적으로 성과를 주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이날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대표단에 막판 합류했다고 보도한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 재료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증시가 이 문제에 예민한 이유는 반도체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47%에 이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그동안 자체 경쟁력에 더해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사실상 대체 공급처로 평가받으며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장비 접근을 넓혀주면 중국의 생산 여건이 개선되고, 이는 한국 메모리 업체들에는 가격과 점유율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조 연구원은 미국이 메모리 부족에 따른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구축 지연 우려 때문에 14나노미터와 7나노미터 공정 관련 장비 구입을 일부 중국 업체에 비공식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며, 이런 흐름이 더 큰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확산하면 한국 메모리 업계에는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반대로 회담이 별다른 진전 없이 동결 수준에 머물면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이번 회담이 반도체 가격 흐름에도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희토류와 미국 반도체를 둘러싼 일정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면 최근 급등한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다소 진정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이 당장 메모리 시장 판도를 바꾸는 단계는 아니지만, 현재의 가격 급등은 인공지능 투자 경쟁과 미국의 물가 부담, 중국의 산업 전략 측면에서 모두 반길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국 미·중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갈등 완화, 즉 데탕트의 신호를 내놓는다면 반도체 업종은 단기적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갈 수 있고, 대신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다른 산업군으로 시장 관심이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국내 증시가 반도체 쏠림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 또 미·중 기술 협상이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지는지에 따라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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