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는 8일 미국발 악재와 한국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장중 8% 넘게 급락했고, 이에 따라 코스피 서킷브레이커와 매도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됐다.
이번 급락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실적 전망이었다. 브로드컴이 제시한 다음 분기 인공지능 관련 매출 전망치 160억달러는 시장 예상치 172억달러를 밑돌았고, 이는 최근 증시를 끌어올린 반도체·인공지능 종목에 대한 기대가 너무 앞서간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같은 날 나온 미국 고용지표는 예상보다 강했다. 경기 체력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뜻이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신호로 받아들였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장주 기대를 낮추는 재료와 금리 부담이 동시에 덮친 셈이다.
이 충격은 곧바로 환율과 외국인 자금 흐름으로 번졌다. 미국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지자 달러화가 강세를 보였고, 원·달러 환율은 7일 야간 거래에서 1천560원을 넘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환율이 급등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환차손 우려 때문에 한국 주식을 더 빨리 팔 가능성이 커진다. 외국인 매도가 늘면 주가가 떨어지고, 자금 유출 압력은 환율을 다시 밀어 올리는 식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이날 시장 공포가 빠르게 증폭된 것도 이런 연결고리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증시 내부의 약점도 낙폭을 키웠다. 코스피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대표주 비중이 워낙 커서, 반도체 업황 기대가 흔들리면 지수 전체가 크게 출렁이는 구조다. 여기에 최근 사흘 동안 신용대출이 1조원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빚을 내 투자하는 자금이 빠르게 불어났다. 이런 차입 투자는 상승장에서는 수익률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반대매매와 강제 청산을 불러 낙폭을 더 키운다.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시장이 계단식이 아니라 엘리베이터처럼 급히 내려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조정은 2000년 닷컴버블 시기와도 비교된다. 당시에도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 자체는 틀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미래 가치를 너무 비싼 가격에 미리 반영한 데 있었다. 지금 인공지능도 비슷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다만 인공지능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수익과 현금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와는 차이가 있다. 결국 시장이 흔들린 핵심은 기술의 실체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 기대가 이미 주가에 과도하게 선반영된 것 아니냐는 재평가에 가깝다.
시장 안팎에서는 이번 급락을 단순한 하루짜리 충격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도체 쏠림을 줄이고 바이오·방산·소프트웨어·신재생에너지처럼 지수를 받쳐줄 산업 저변을 넓히는 과제가 다시 부각되고, 단기 차익 중심의 레버리지 투자 문화에 대한 경계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미국 금리 경로와 인공지능 관련 실적 검증 과정에 따라 이어질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기술의 성장성과 현재 주가 수준을 더 엄격하게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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