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 요건 강화 이후 액면병합을 추진한 상장사가 올해 276건으로 늘었지만, 신주 상장 이후 10건 중 8건 이상은 상장일 종가보다 주가가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주식 수를 줄여 주당 표시 가격만 높이는 방식으로는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를 바꾸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화투자증권은 15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29개 종목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사유별로는 주가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 요건이 20개, 시가총액 미달이 12개였다. E8, 온타이드, 형지글로벌은 두 요건에 모두 해당됐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은 7월 1일부터 적용됐다.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시가총액 기준도 유가증권시장 300억원, 코스닥시장 200억원으로 높아졌다.
관리종목 지정은 곧바로 상장폐지를 뜻하지 않는다. 다만 지정 이후 90거래일 안에 45거래일 연속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절차 대상이 된다. 본지는 앞서 주가와 시가총액 기준을 맞추지 못한 상장사들이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고 보도했다.
상장사들은 액면병합을 늘렸다. 정부와 거래소가 개혁 방안을 발표한 2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추진된 액면병합은 276건이었다. 유가증권시장이 57건, 코스닥시장이 219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액면병합은 2024년 5건, 2025년 12건에 그쳤다. 올해 건수는 전년 같은 기간의 23배 수준이다. 동전주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코스닥시장에서 병합이 더 많이 이뤄진 셈이다.
결과는 제한적이었다. 한화투자증권이 2월 12일부터 7월 15일까지 이사회 결의 뒤 신주 상장을 마친 156건을 분석한 결과, 130건은 신주 상장일 종가보다 주가가 낮아졌다. 비율로는 83.3%다.
액면병합은 주식 여러 주를 한 주로 합쳐 주당 가격을 높이는 방식이다. 예컨대 5대 1 병합을 하면 보유 주식 수는 5분의 1로 줄고, 이론상 주당 가격은 5배가 된다. 회사 전체 가치가 늘어나는 조치는 아니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액면분할이나 병합은 주식 수만 바뀔 뿐 기업가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명목적 사건”이라며 “올해 상폐 개혁방안 발표 이후 추진된 액면병합은 규제 회피 목적이라는 시장의 의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적이나 사업 성장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병합 이후에도 주가 회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 구조상 액면병합은 상장 유지 기준을 맞추는 데 시간을 벌 수는 있다. 그러나 매출 성장, 수익성 개선, 주주환원 같은 변화가 함께 나오지 않으면 투자자 평가는 달라지기 어렵다. 신주 상장 이후 주가가 다시 낮아진 사례가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반대로 기업 성장과 주주환원책이 동반된 액면분할은 다른 평가를 받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980년부터 2024년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중 액면분할을 발표한 기업의 이후 12개월 평균 수익률이 25.4%였다고 집계했다. 같은 기간 지수 평균 수익률은 약 12%였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남양유업 사례가 거론됐다. 삼성전자는 2018년 1주당 250만원 수준이던 주식을 50대 1로 분할했고, 배당 확대를 병행했다. 남양유업은 2024년 자사주 소각과 함께 10대 1 액면분할을 단행했다.
두 사례는 단순한 주가 표시 변경보다 주주환원과 경영 변화가 함께 제시됐다는 점에서 액면병합과 구분된다. 액면분할이든 액면병합이든 주식 수 조정만으로는 기업의 기초 체력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
엄 연구원은 “실적이나 사업 성장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종목은 액면분할이나 병합 이후에도 주가 회복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액면병합 기업의 상장 유지 여부는 병합 자체보다 이후 매출 성장, 수익성 개선, 기준 주가 유지 여부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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