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6조6000억달러 예금 이탈 경고…미 은행권, 스테이블코인 규제 전선 확대

| 서지우 기자

은행권이 스테이블코인 규제 전선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은행협회(ABA)가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예금 이탈’과 ‘대출 기능 약화’를 초래해 전통 은행의 예대(예금-대출) 모델을 흔들 수 있다며, 관련 입법 논의 전반을 재점화하는 모양새다.

현지시간 11일(화) 워싱턴에서 열린 ABA 서밋에는 금융권 리더 약 1,400명이 참석했다. 캐시 오웬(Cathy Owen) ABA 차기 의장은 이 자리에서 “특히 농촌과 지역사회에서 예금이 줄어든다면 극도로 해로울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을 예금 기반 비즈니스에 대한 직접 위협으로 규정했다. ABA의 디지털자산 담당 브룩 이바라(Brooke Ybarra)도 “디지털 지갑에 보관된 스테이블코인은 지역사회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의 문제 제기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명확화를 목표로 한 클래리티 법(Clarity Act)이 표류하는 국면과 맞물린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달러 가치에 연동돼 가격 변동성을 낮춘 디지털 자산으로 결제·송금에 활용되지만, 은행권은 이 자금이 은행 시스템 밖으로 이동할 경우 ‘디스인터미디에이션(중개 기능 약화)’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본다. ABA는 최대 6조6,000억달러 규모의 예금 유출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ABA가 52개 주 은행협회와 함께 의회에 공동 서한을 보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도구’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핵심 요구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뿐 아니라 거래소·플랫폼이 사실상 이자에 해당하는 보상(yield)을 제공할 수 있는 ‘루프홀(허점)’을 법으로 막아달라는 것이다. 국제 주요 매체들도 이 공동 서한과 은행권 설문 결과를 인용해, “예금 기반 대출 모델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를 갈등의 중심 축으로 전하고 있다.

정치권 사정도 단순하지 않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입법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커지는 가운데, 공화당 내부 균열과 선거 구도까지 겹치며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는 변수가 늘었다. 상원 은행위원회도 올해 초 협상이 결렬된 뒤 공개 논의를 본격적으로 재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스윙보트로 거론되는 톰 틸리스(Thom Tillis) 공화당 상원의원이 은행권의 ‘예금 이탈’ 논리를 신중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협상 재가동 여부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은행권은 입법 외 전선도 넓히고 있다. ABA는 크립토 거래소 크라켄(Kraken)이 연방준비제도(Fed)의 결제 인프라 접근 권한을 확보한 사례를 문제 삼으며, 수천 개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이 사용하는 결제 레일에 크립토 기업이 합류하는 흐름이 전통 금융의 ‘배타적 영역’을 허문다고 주장한다. 최근 크립토 기업들의 은행 인가(OCC 은행 charter) 신청이 늘고, 결제 인프라 접근 사례가 쌓이는 것 자체가 은행권 위기감을 자극하는 재료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충돌을 단순 로비전으로만 보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와 결제 인프라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23조달러 규모로 평가되는 미국 대출 산업의 구조 변화와 직결돼 있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예금이 줄고, 은행의 신용공급 여력이 떨어지면 실물경제로의 충격도 커질 수 있다는 게 전통 금융의 논리다.

핵심 쟁점은 ‘스테이블코인 보상’…GENIUS Act 이후 남은 ‘루프홀’ 공방

논쟁의 불씨는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이자’ 역할을 하는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지니어스 법(GENIUS Act)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코인 자체에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 성격으로 한정했다. 은행권이 우려하는 “예금이 더 높은 수익을 주는 디지털 달러로 이동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차단한 조치로 해석된다.

다만 발행사가 직접 이자를 주지 않더라도, 거래소나 지갑 사업자 등 제3자 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보상·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은 남아 있다. 은행권은 이 부분이 사실상 이자 제공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클래리티 법(Clarity Act) 논의에서 GENIUS Act의 금지 취지를 더 넓게 적용해 ‘루프홀’을 봉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크립토 업계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확장과 이용자 혜택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혁신 억제’라고 반발한다.

올해 1월 논의 과정에서는 ‘패시브 수익(보유만으로 받는 이자 성격의 보상)’은 금지하되, 결제·송금·이체·해외송금(remittances) 또는 디파이 유동성 공급 등 특정 활동과 연계된 보상은 허용하는 절충안이 거론됐다. 그러나 표결을 앞두고 코인베이스(Coinbase)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암스트롱(Brian Armstrong)이 패시브 수익 금지에 반대하며 지지를 철회했고, 팀 스콧(Tim Scott) 상원 은행위원장이 표결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논의는 다시 멈춰 섰다.

트럼프 대통령 변수…규제 명확화 드라이브, 선거 국면에서 정치화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니어스 법이 은행들에 의해 위협받고 훼손되고 있으며, 이는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국은 시장 구조를 가능한 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ASAP)”고 언급했다. 백악관이 규제 명확화에 우호적 신호를 보내도, 이해관계가 첨예한 ‘보상’ 쟁점이 풀리지 않으면 클래리티 법(Clarity Act)을 포함한 스테이블코인 규제 패키지 전반이 다시 표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갈등 프레임을 바꿀 수 있다고도 본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MNEE 최고경영자 론 타터(Ron Tarter)는 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중심 모델에 ‘도전’하는 기술이라면서도, 백악관의 공개 지지가 혁신과 글로벌 경쟁 측면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물자산(RWA) 마켓플레이스 tx의 최고법무책임자이자 전 SEC 선임 자문역인 애슐리 에버솔(Ashley Ebersole)도 백악관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적 ‘레버(지렛대)’가 적지 않다고 봤다. 다만 대통령의 영향력은 정치적 인기도와 선거 환경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기술 판정만으로 결론이 나기 어렵다. 예금과 결제 인프라를 둘러싼 전통 금융의 이해관계, 중간선거를 앞둔 워싱턴의 정치 셈법, 그리고 GENIUS Act 이후 남은 ‘보상’ 루프홀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향후 쟁점으로 남는다. 법안이 다시 궤도에 오르더라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범위와 보상 허용 기준을 둘러싼 은행권과 크립토 업계의 신경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사요약 by TokenPost.ai

🔎 시장 해석

- 미국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이 예금(은행의 핵심 조달원)을 흡수하면 은행의 대출 공급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

- 최대 6조6000억달러 규모의 예금 이탈 가능성이 거론되며,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결제 혁신’과 ‘금융중개 약화’ 사이의 충돌로 재부각

- 의회 내 스테이블코인 입법(클래리티 법, GENIUS Act 등) 논쟁이 격화되며 규제 강도·적용대상 범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

💡 전략 포인트

- 규제 변수에 따라 수혜/피해 업종이 갈릴 수 있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결제/가맹 네트워크·은행주의 정책 리스크를 분리해 점검

- ‘예금 대체’ 우려가 커질수록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준비금·유통한도·발행자 요건 강화(은행 중심 모델 선호)로 로비를 강화할 가능성

- 투자 관점에서는 법안 통과 속도와 핵심 쟁점(발행 주체, 준비자산, 감독기관, 소비자 보호)이 단기 변동성을 키울 수 있어 뉴스 플로우 대응 필요

📘 용어정리

- 스테이블코인: 달러 등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암호자산으로 결제·송금에 활용

- 예금 이탈(Deposit Flight): 은행 예금이 머니마켓펀드(MMF)·국채·스테이블코인 등으로 이동하는 현상

- 준비금(Reserves):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상환을 위해 보유해야 하는 현금·단기국채 등 담보 자산

- GENIUS Act / 클래리티 법: 미국 내 스테이블코인 및 디지털자산 규율 체계를 정하려는 주요 입법 논의(감독체계·요건 정의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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