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AML) 강화를 위해 추진되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이 오히려 ‘규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금세탁 방지 실익보다 자본 유출과 이용자 부담 증가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미국 스테이블코인 AML 규율체계와 한국 특금법 정비 과제’ 세미나에서 한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자금세탁방지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지만 반드시 AML에 유리하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트래블룰 적용 범위 확대 △1000만원 이상 거래 시 자동 의심거래(STR) 보고 의무화 △정보 미제공 시 거래 거절 △개인지갑 입출금 제한 등이 포함됐다.
이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기준에 맞춰 제도를 정비하려는 조치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금액 기준 자동 STR 보고’다. 한 변호사는 해당 조치가 FATF 권고와 특금법이 요구하는 ‘합당한 근거’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정 금액 이상 거래를 일괄적으로 의심거래로 간주할 경우, 이용자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거래를 쪼개는 ‘스머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1000만원 기준을 피하기 위해 990만원 단위로 나눠 송금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거래 횟수 증가로 수수료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오히려 추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규제가 강화될수록 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규제 역전’ 현상도 우려된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AML 체계를 강화하려는 정책 취지와 달리, 국내 금융당국의 감시 범위 밖으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상훈 전북은행 부행장과 황석진 동국대 교수 역시 과도한 규제가 이용자 불편을 넘어 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논란을 의식한 모습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5월 13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및 국내 거래소들과 함께 의견 수렴 회의를 열 예정이다.
정부는 2019년 FATF 평가 이후 AML 제도 선진화를 추진해왔으며, 2021년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를 도입해 현재 27개 사업자를 관리 중이다.
다만 이번 특금법 개정안은 ‘자금세탁방지’라는 목표와 ‘시장 현실’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규제가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시장 위축과 자금 해외 유출이라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보완 방향에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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