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결정적’인 가상자산 규제 전환에 나섰다. 고율 과세로 투자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던 구조를 뒤집고, 제도권 금융과의 접점을 본격 확대하는 흐름이다.
일본 금융당국은 6월 1일부터 외국 신탁형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규제를 시행한다. 이에 따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USDC 등도 일본 내에서 합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동안 일본은 가상자산 규제 측면에서 보수적인 국가로 평가받았다. 특히 최대 55%에 달하는 ‘누진 과세’ 구조는 고빈도 거래자와 마켓메이커, 웹3 스타트업을 싱가포르와 두바이 등으로 이동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현재 일본 국세청은 가상자산 수익을 ‘기타 소득’으로 분류해 최대 55%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이를 주식과 동일한 20% 수준의 ‘분리과세’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일본암호자산비즈니스협회는 정책 제안서를 통해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개인 투자자 과세율은 0~15% 수준”이라며 경쟁력 확보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세율 인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재분류하는 법적 변화가 동시에 요구된다.
개편안의 또 다른 축은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등 주요 가상자산을 기존 ‘결제서비스법’이 아닌 ‘금융상품거래법(FIEA)’ 체계로 편입하는 것이다.
이 변화가 현실화될 경우, 일본에서도 현물 및 파생형 ETF 출시가 가능해진다. 이는 기존 규제 구조상 불가능했던 영역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24년 1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이후, 수십억 달러의 기관 자금이 빠르게 유입된 사례는 일본 규제당국에도 중요한 참고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금융권은 이미 제도 변화에 대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노무라의 디지털자산 자회사 ‘레이저 디지털’과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은 토큰화 증권 및 펀드 상품 실험을 진행해왔다.
이들은 규제 정비가 완료될 경우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기반 금융상품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같은 시기 SBI홀딩스는 일본 내 가상자산 ETF 상품을 신청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이는 새로운 ‘제도권 시장’ 형성을 염두에 둔 선제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번 스테이블코인 제도 개편은 단순한 결제 허용을 넘어, 전체 금융 인프라 재편의 일부로 해석된다.
SBI VC 트레이드는 새로운 규제 하에서 USDC 기반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이며, 이는 향후 ETF 시장에서 필요한 ‘정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즉, 규제된 스테이블코인, 면허 기반 중개업자, 해외 발행자와의 기준 정립이 결합되며 기관 중심 시장 구조의 토대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가상자산 규제 경쟁은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 중이다. 유럽은 MiCA 규제를 시행했고, 홍콩은 일본보다 먼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를 출시했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0% 자본이득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역시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을 통해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간 관할을 정리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갤럭시 디지털의 알렉스 쏜은 해당 법안의 2026년 통과 확률을 65~75%로 추정했다.
이와 비교해 일본의 전략은 ‘속도’보다 ‘구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수조 달러 규모의 내국 자산을 기반으로, 규제 정합성과 제도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이다.
레담앤왓킨스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규칙 우선이지만 혁신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유럽 MiCA와 유사한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높은 세율로 인해 위축됐던 일본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 개편을 계기로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정책 수정이 아니라, 일본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다시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신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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