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붕괴 이후 추진해 온 대형은행 규제 개편을 입법 협의 단계로 넘겼다. 경영진 책임과 보수 환수, 감독 권한, 위기 대응용 유동성 준비를 함께 강화하는 방안이다.
스위스 연방평의회는 12일 은행법과 유동성조례 개정안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의견 수렴 기한은 11월 19일까지다.
개정안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의 위기를 예방하고 부실 발생 시 정리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납세자의 부담으로 대형은행을 구제해야 하는 상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주요 내용은 △시니어 매니저 책임제 도입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의 보수 환수 장치 마련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의 조기 개입·벌금 권한 확대 △대형은행 회생·정리 계획 강화 △스위스 국립은행(SNB)과 해외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받기 위한 담보 준비다.
시니어 매니저 책임제는 주요 의사결정의 담당자와 책임 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정하는 장치다. 보수 환수 제도는 경영 실패나 위법 행위가 드러났을 때 이미 지급한 성과급 등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번 개편의 출발점은 2023년 3월 발생한 크레디트스위스 위기다. FINMA는 같은 해 12월 보고서에서 전략 실행 실패와 반복된 스캔들, 부실한 위험 관리로 크레디트스위스가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고 밝혔다.
FINMA는 당시 위기 대응 과정에서 법적 권한의 한계도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시니어 매니저 책임제와 벌금 부과 권한, 강화된 지배구조 규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자본 규제는 별도 절차로 먼저 추진됐다. 연방평의회는 4월 22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스위스 은행이 해외 자회사 참여지분을 보통주자본(CET1)으로 전액 뒷받침하도록 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채택했다.
CET1은 은행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이를 흡수하는 핵심 자본이다. 해외 자회사에서 발생한 손실이 본점의 자본 건전성까지 훼손하지 않도록 충분한 완충 장치를 두는 것이 정부안의 핵심이다.
정부는 해당 규제가 UBS에 약 200억 달러(약 28조2400억원)의 추가 CET1 자본 부담을 줄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개편안이 적용된 뒤 UBS 그룹의 CET1 비율은 15.5% 수준으로 제시됐다.
UBS는 4월 22일 성명에서 정부안에 “strongly disagree”한다고 밝혔다. 제안된 규제 패키지가 “extreme”하고 국제적 정합성이 부족해 스위스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UBS는 규제가 완전히 시행되면 그룹 기준 순 CET1 자본이 약 40억 달러(약 5조648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해외 자회사 참여지분을 전액 차감하는 방안에는 단독 기준 약 200억 달러의 추가 CET1이 필요하다고 봤다.
반면 FINMA는 4월 연방평의회 안을 환영하며 책임제와 벌금 부과 권한, 공시 권한 강화를 지지했다. SNB도 7월 UBS가 계획된 개혁을 감당할 만큼 충분한 자본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위스 의회는 UBS에 요구할 추가 CET1 자본 규모를 두고 결론을 미룬 뒤 안정성과 금융산업 경쟁력 사이의 절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로이터는 7월 의회가 정부 요구치인 약 200억 달러를 완화할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스위스 은행협회도 두 가치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은행법 개정안은 의회 절차를 거쳐 이르면 2029년 초 시행될 수 있다. 유동성조례의 담보 준비 요건은 관련 법률상 담보 이전 완화 조치가 확정된 뒤 2033년부터 적용하는 일정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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