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11연방항소법원이 가상자산 절도 피해자들이 바이낸스(Binance)를 상대로 낸 소송을 연방법원에서 계속 심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바이낸스 계정을 열거나 약관에 동의한 적이 없는 피해자에게 거래소 약관상 중재 조항을 곧바로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제11연방항소법원은 19일(현지시간, 한국시간 20일) 만다무스 명령을 발령해 남부 플로리다 연방지법의 중재 강제 결정을 취소하도록 했다. 이번 판단은 바이낸스의 본안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아니라, 사건을 법원 밖 중재 절차로 보낼 수 있는지를 다룬 절차 판단이다.
소송은 2024년 8월 서부 워싱턴에서 제기된 마틴(Martin) 사건과 이후 병합된 바라타(Baratta) 사건에서 출발했다. 원고들은 도난당한 가상자산이 다른 거래소에서 빠져나와 바이낸스 계정으로 흘러갔다고 주장했다.
피고에는 바이낸스와 Binance.US 운영사인 BAM 트레이딩 서비스(BAM Trading Services), 창펑 자오(Changpeng Zhao) 바이낸스 공동창업자가 포함됐다. 원고 측은 전환, 전환 방조, 리코법(RICO) 위반 등을 주장하고 있다.
남부 플로리다 연방지법은 2026년 3월 16일 바이낸스 측의 중재 강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 기록상 1심은 앞선 오스터러(Osterer) 사건과 사실관계가 유사하다고 보고, 원고들의 청구가 바이낸스 약관과 관련돼 있어 중재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이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들이 바이낸스 계정을 만든 적이 없고, 청구의 중심도 약관상 권리가 아니라 도난 자산 추적, 고객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내부통제 의무와 관련된 법정 의무라는 점을 본 것이다.
쟁점은 바이낸스가 절도 피해에 책임이 있는지가 아니다. 법원이 먼저 본안 심리를 할 수 있는지, 아니면 피해자들이 사적 중재 절차로 가야 하는지가 핵심이다.
중재는 법원이 아닌 사적 절차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기업 약관에는 이용자가 분쟁을 제기할 때 법원 소송 대신 중재를 거치도록 하는 조항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번 사건의 원고들은 바이낸스 서비스를 이용한 당사자가 아니었다. 항소심 판단은 계약 당사자가 아닌 피해자에게까지 약관상 중재 조항을 넓혀 적용하려면 별도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만다무스는 항소심이 하급심의 명백한 법리 오류를 바로잡도록 명령하는 절차다. 통상적인 항소와 달리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수단인 만큼, 항소심은 1심의 중재 강제 판단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원고 측 주장은 도난 자산이 바이낸스 계정으로 흘러간 뒤 거래소가 이를 막거나 추적할 의무를 다했는지에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사건은 거래소 약관의 적용 범위뿐 아니라 고객확인, 자금세탁방지, 내부통제 기준과도 맞물려 있다.
바라타 사건에는 캘리포니아 불공정경쟁법과 매사추세츠 소비자보호법 관련 청구도 포함됐다. 다만 이들 주장의 진위와 바이낸스의 책임 범위는 아직 본안에서 판단되지 않았다.
이번 결정은 거래소 약관이 방어 수단으로 작동하는 범위를 둘러싼 미국 법원의 시각을 보여준다. 사용자가 직접 계정을 만들고 약관에 동의한 경우와 달리, 비사용자 피해자에게까지 중재 조항을 확장할 수 있는지는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도난 자산 유입 의혹이 제기될 때 약관만으로 소송 절차를 차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계정 보유 여부와 별개로 법정 의무 위반 주장을 법원에서 다툴 여지가 생겼다.
사건은 남부 플로리다 연방지법으로 돌아가 후속 절차를 밟게 된다. 기각 신청, 증거개시, 집단소송 인증, 본안 입증 여부가 다음 쟁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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