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등 유럽연합(EU) 순기여국 6곳이 약 2조 유로 규모의 2028~2034년 장기예산안을 수천억 유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공동부채와 재정 확대를 둘러싼 이견이 커지면서 연말 합의를 목표로 한 예산 협상이 초반부터 충돌하는 양상이다.
독일 정부는 27일 공동성명에서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과 함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예산 제안을 수천억 유로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6개국은 감축이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하며 모든 지출 항목이 조정 대상이 돼야 한다고 했다. 새 공동차입은 예산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고도 선을 그었다.
쟁점은 유럽연합의 7년짜리 재정 틀인 다년도 재정계획(MFF)이다. MFF는 농업, 지역 개발, 연구, 국경 관리, 안보 등 유럽연합 차원의 지출 한도를 정하는 장기 예산 구조다. 회원국이 매년 예산을 다시 짜더라도 큰 틀은 이 계획 안에서 움직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5년 7월 16일 2028~2034년 MFF 제안을 내놓으며 규모를 거의 2조 유로, 유럽연합 평균 국민총소득(GNI)의 1.26%로 제시했다. 집행위는 안보, 국방, 경쟁력, 이주, 에너지, 기후 회복력 대응을 이유로 예산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독일 총리는 같은 날 독일 총리실 회견에서 현재 제안이 최대 60% 증액을 담고 있어 재정 건전화 시기에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유럽연합 예산의 약 40%를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순기여국들이 예산 확대 속도와 부담 배분을 동시에 문제 삼은 셈이다.
순기여국은 유럽연합 예산에 내는 돈이 받는 돈보다 많은 국가를 말한다. 이들 국가는 통상 단일시장과 역내 안정에서 얻는 이익을 인정하면서도, 재정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데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번 공동성명도 회원국 재정 긴축과 유럽연합 예산 확대가 함께 갈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바탕을 뒀다.
유럽의회는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유럽의회 예산위원회는 4월 15일 입장문에서 2028~2034년 예산을 유럽연합 GNI의 1.27%로 두고, 넥스트제너레이션이유(NextGenerationEU) 상환비용은 예산 한도 밖에 두자고 제안했다. 이 안은 집행위의 2025년 7월 제안보다 10% 늘어난 수준이다.
유럽의회는 농업, 응집정책, 연구, 교육, 국방 재원을 유지하거나 늘려야 한다는 쪽에 서 있다. 반면 독일 등 6개국은 모든 지출 항목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같은 예산안을 두고 한쪽은 확대 필요성을, 다른 한쪽은 부담 가능성을 앞세우는 구도다.
공동차입도 핵심 쟁점이다. 유럽연합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넥스트제너레이션이유를 통해 공동채권 발행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이를 장기예산의 상시 재원처럼 활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는 회원국 간 의견이 갈린다.
독일 등 재정 보수 성향 국가는 공동부채가 회원국의 재정 책임을 흐릴 수 있다고 본다. 반대로 예산 확대를 주장하는 쪽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에너지 전환 같은 과제가 개별 국가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공동 과제라고 본다. 이번 협상은 지출 총액뿐 아니라 유럽연합 재정 통합의 범위를 다시 묻는 성격도 갖는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직접적인 가상자산 가격 재료라기보다 유럽 재정정책과 국채 발행 흐름을 가늠하는 거시 변수에 가깝다. 유럽연합 차원의 재정 확대나 공동채권 논의는 중장기적으로 유로존 금리와 유동성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이번 예산 충돌이 비트코인(BTC)이나 이더리움(ETH) 등 특정 가상자산의 수급 변화로 이어졌다는 직접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확인된 것은 유럽연합 재정 규모와 공동부채 방식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다. 시장 영향은 향후 예산 총액, 재원 조달 방식, 국채 발행 계획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따져볼 문제다.
유럽이사회 의장 안토니우 코스타(António Costa)는 25일 시작한 회원국 순방에서 2026년 말 합의를 목표로 협상을 조율하고 있다. 유럽이사회는 이번 순방이 앞으로 몇 달간의 협상 방향을 정리하기 위한 절차라고 설명했다. 회원국 간 입장 차가 큰 만큼 정치적 절충안 마련이 협상의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MFF 규정은 회원국 만장일치와 유럽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유럽이사회는 2026년 말까지 정치적 합의를 이루고 2027년 관련 입법을 마친 뒤 2028년 1월부터 새 장기예산을 집행하는 일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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