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ECB)이 토큰화 자산 결제를 중앙은행 화폐와 연결하는 제도 설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분산원장기술(DLT) 기반 금융거래를 기존 유로시스템 결제망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피에로 치폴로네(Piero Cipollone) 유럽중앙은행 집행이사는 8월 26일 독일 연방은행 심포지엄 연설에서 폰테스(Pontes)와 아피아(Appia)를 통해 토큰화 금융의 운영 기반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폰테스는 시장 DLT 플랫폼을 유로시스템 타깃(TARGET) 서비스와 연결해 현금 결제 부분을 중앙은행 화폐로 마무리하는 체계다.
유럽중앙은행이 밝힌 폰테스의 초기 가동 시점은 2026년 3분기다. 이후 영업일 기준 운영 시간을 22.5시간으로 늘리고, 2028년 중반에는 24시간·주 7일 서비스와 더 높은 프로그래머빌리티, 멀티통화 기능을 목표로 한다.
아피아는 폰테스보다 넓은 장기 로드맵이다. 유럽중앙은행은 3월 공개한 아피아 문서에서 2028년 토큰화 금융 생태계 청사진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작업 축에는 자산 상호운용성, 표준, 통화정책 집행, 담보 관리가 포함됐다.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유럽 자본시장의 파편화가 있다. 치폴로네 집행이사는 같은 연설에서 유럽연합(EU)에 중앙예탁기관(CSD) 31곳, 중앙청산소(CCP) 14곳, 거래소 323곳이 있다고 짚었다. 2023년에는 거래의 95% 이상이 같은 개별 중앙예탁기관 안에서 결제됐다.
중앙예탁기관은 증권의 보관과 결제를 맡는 시장 인프라다. 중앙청산소는 거래 상대방 사이에 서서 결제 위험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유럽 시장은 국경과 제도 단위로 인프라가 나뉘어 있어, 토큰화가 확산되더라도 결제·보관·자산 서비스가 다시 쪼개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토큰화가 결제와 보관, 자산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서 묶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중앙은행 화폐가 결제 앵커로 남지 않으면 사적 결제수단 의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보고 있다. 이번 로드맵은 토큰화 자산 자체보다 결제 최종성을 어느 공적 인프라에서 보장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책은 단계적으로 진행돼 왔다. 유럽중앙은행은 1월 27일 DLT를 쓰는 중앙예탁기관에서 발행된 시장성 자산을 3월 30일부터 유로시스템 담보로 받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완전히 DLT 네트워크 위에서 발행된 자산의 담보 인정은 추가 검토 대상으로 남겼다.
8월 19일에는 금융시장 이해관계자와 공공기관 61곳이 아피아 연락그룹에 선발됐다. 이 그룹은 폰테스 운영과 아피아 비전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는다. 시장 인프라와 공공기관이 같은 논의 틀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실무 검증 단계가 넓어진 셈이다.
앞서 확인된 구조는 유로시스템 DLT 플랫폼의 현금 토큰을 쓰거나 실시간총액결제(RTGS) 시스템인 T2를 통해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폰테스는 토큰화 증권 등 도매 금융거래를 중앙은행 화폐 결제망에 연결하는 유로시스템 해법으로 제시됐다.
유럽중앙은행의 4월 매크로프루덴셜 게시물에 따르면, 공공 블록체인 위 토큰화 자산의 글로벌 시가총액은 2026년 2월 380억 유로로 추정됐다. 2024년 초 74억 유로에서 늘었지만, 전통 금융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함께 제시했다.
이사벨 슈나벨(Isabel Schnabel) 유럽중앙은행 집행이사는 8월 28일 잭슨홀 연설에서 중앙은행도 “온체인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토큰화 환경에서 중앙은행 화폐와 정책 집행 도구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시장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링크드인과 포럼에서는 중앙은행 화폐 기반 결제가 토큰화 도매거래의 병목을 풀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디지털 유로 전반에 대해서는 감시와 통제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이번 사안은 크립토 시장의 단기 가격 재료라기보다 중앙은행 결제망과 토큰화 금융의 접점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문제에 가깝다. 유럽의 쟁점은 발행 여부만이 아니라 민간 결제 사업자와 중앙은행 결제 수단의 공존 방식에도 걸려 있다.
유럽중앙은행 문서들은 폰테스와 아피아를 별도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으로 설명한다. 폰테스가 중앙은행 화폐 기반 결제 연결을 맡고, 아피아가 상호운용성·표준·담보 관리·통화정책 집행의 장기 구조를 다루는 방식이다.
현재 확인된 것은 정책 방향과 로드맵이다. 모든 준비금을 온체인화하는 확정 규정은 아니며, 폰테스는 2026년 3분기 초기 가동 뒤 2028년 중반까지 운영 시간과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일정으로 제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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