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국의 신용대출 체계가 취약한 차주를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금융권과 당국에 근본적인 재설계를 촉구했다.
3일 금융권과 대통령실 안팎에 따르면 김 실장은 1일부터 3일까지 페이스북에 ‘금융의 구조 시리즈’ 형식의 글 3편을 잇달아 올리며 현행 신용평가와 대출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했다.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이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내야 하느냐”는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이었다. 김 실장은 처음에는 금융의 기본 원리를 벗어난 문제 제기라고 여겼지만, 곱씹어 보니 금융 시스템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묻게 만드는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신용등급이 개인의 복잡한 삶을 숫자 하나로 압축한 결과물에 불과한데도, 실제 금융 현장에서는 사실상 절대적 기준처럼 작동하고 있다고 짚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런 경향은 더 강해졌고, 금융회사는 위험이 큰 차주를 포용하는 대신 문턱을 더 높이는 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신용자는 높은 금리를 감수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제도권 금융에 접근할 기회 자체를 잃었고, 중간 신용대의 차주 역시 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배제돼 왔다고 김 실장은 진단했다. 그는 이를 두고 한국 금융이 우연히 형성된 결과가 아니라, 비용과 효율 논리 속에서 사실상 방치된 구조적 모순이라고 규정했다.
해법과 관련해 김 실장은 금융 주체별 역할을 구분해 제시했다. 시중은행에는 고신용자 중심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 중간 신용대까지 포괄하는 방식으로 대출 구성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인터넷은행을 향해서는 과거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용 이력만 좇는 선별 영업, 이른바 체리피킹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서민금융기관에는 기존 운영 모델의 조정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기관 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을 향해서도 건전성 관리라는 명분 뒤에 숨어 금융 사각지대를 키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실장은 동시에 자신 역시 이런 체계를 설계하고 작동시키는 데 관여했던 인물이라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인정했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경력을 언급하며, 자신도 이 시스템의 “공범”이었다고 표현한 것은 단순한 수사라기보다 정책 설계자 입장에서의 자성으로 읽힌다. 이는 새 정부가 금융의 안정성만이 아니라 포용성과 접근성까지 정책 평가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김 실장의 문제 제기가 당장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신용대출은 은행의 건전성, 가계부채 관리, 서민금융 지원이 한꺼번에 얽힌 분야여서 변화의 폭과 속도를 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실 핵심 참모가 신용대출 구조 자체를 공개적으로 겨냥한 만큼, 앞으로는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신용평가 방식 보완, 서민금융 공급체계 재정비 같은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금융정책의 무게중심이 단순한 위험 관리에서 금융 접근성 개선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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