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출신 창업자, 건설 현장 문서 읽는 AI로 트렁크 툴스 키웠다

| 손정환 기자

건설 현장의 복잡한 문서를 ‘AI’로 읽어내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목수 출신 창업자 세라 부흐너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트렁크 툴스(Trunk Tools)를 세웠고, 비정형 데이터가 넘치는 건설 산업의 비효율을 정면으로 공략했다.

목수 출신 창업자, 현장 경험으로 AI 사업 기회 포착

세라 부흐너는 오스트리아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랐고,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건설 현장을 경험했다. 그는 10대 때 목수 일을 시작한 뒤 업계를 떠나지 않았고, 이후 유럽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종합건설관리자로 경력을 쌓았다.

커리어의 전환점은 자신이 관리하던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뒤였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건설 노동자를 위한 보건·안전 앱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분석 분야로 관심을 넓혔다. 이후 건설 데이터 과학과 초기 인공지능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업계 전반에 흩어진 문서와 시스템 속 정보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서 400만 장’ 건설 현장, AI 에이전트로 연결

부흐너는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옮겨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고, 재학 중이던 2021년 트렁크 툴스를 창업했다. 졸업은 2022년에 했으며, 회사가 본격적인 제품-시장 적합성을 찾은 시점은 2023년이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는 대형언어모델, 즉 LLM의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던 때와 맞물린다. 건설 산업에서는 특히 의미가 컸다. 부흐너에 따르면 일반적인 건설 현장 하나에도 300만~400만 페이지에 이르는 문서가 여러 시스템에 분산돼 있다. 트렁크 툴스는 이들 시스템과 연동해 상위 분석 계층을 만들고, 데이터를 읽어 업무 자동화와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이 회사의 ‘AI 에이전트’는 계약서와 설계 도면을 검토하고, 충돌이나 불일치를 찾아내며, 시방서·제출 문서·입찰 관련 업무를 돕는다. 한 에이전트가 도면상의 문제를 발견하면 다른 에이전트가 후속 조치와 프로젝트 전체 파급효과를 계산하는 식이다. 부흐너는 건설 프로젝트의 변화가 다른 공정과 비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연결 분석이 현장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도 제시됐다. 한 프로젝트에서는 발주처가 요청한 변경 사항이 약 1억달러, 원화 약 1,420억6,000만원 규모 사업에 약 400만달러, 원화 약 56억8,240만원의 추가 비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시공사가 이 비용을 제시하자 발주처는 변경을 철회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작업자의 눈에 화학물질이 들어가자 현장 인력이 AI 에이전트에 대응 방법을 물었고, 시스템이 즉시 단계별 응급 대응 절차를 안내했다.

직원 100명 넘어…2025년 기업가치 3억2,500만달러

현재 뉴욕에 본사를 둔 트렁크 툴스는 직원 수가 100명을 넘어섰다. 부흐너는 단독 창업자지만, 박사 과정에서 쌓은 기술적 배경 덕분에 별도의 기술 공동창업자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초기에 경험 많은 AI 엔지니어를 영입했고, 이후 기술 리더십 조직도 확대했다.

제품군도 빠르게 늘었다. 약 1년 전만 해도 실제 운영 중인 AI 에이전트는 2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0개 이상으로 늘었다. 출시 속도가 빨라 영업팀과 고객 성공팀이 새 기능을 따라 교육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고 회사 측은 전했다.

트렁크 툴스는 인사이트 파트너스, 레드포인트, 이노베이션 엔데버스 등으로부터 약 7,000만달러, 원화 약 994억4,200만원를 유치했다. 부흐너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4배 성장했고, 올해도 약 3.5배 성장이 예상된다. 가장 최근 투자 라운드는 2025년 진행된 4,000만달러, 원화 약 568억2,400만원 규모 시리즈B로, 당시 기업가치는 3억2,500만달러, 원화 약 4,616억9,500만원로 평가됐다.

비전형 창업자의 약점, 오히려 경쟁력이 되다

초기 자금 조달은 쉽지 않았다. 부흐너는 자신이 전형적인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 설득이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다만 트렁크 툴스가 시장 반응을 얻기 시작한 이후에는 오히려 깊은 현장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수년간 고객과 같은 일을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 투자 미팅에서 건설 현장의 세부적인 문제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즉, 기술 자체보다 ‘어떤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를 더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의미다.

보수적인 건설 산업도 ‘AI’는 빠르게 받아들여

건설 산업은 금융이나 법률 서비스 업종보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도입 속도가 느린 편으로 평가돼 왔다. 구매를 결정하는 경영진과 실제 현장에서 쓰는 작업자 사이의 거리가 멀고, 현장 인력은 공정 압박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도구 변경에 따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익성이 높지 않은 업계 특성상 기술 도입의 실패 비용도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한다.

그럼에도 부흐너는 ‘AI’ 도입 속도만큼은 자신이 본 어떤 기술보다 빠르다고 진단했다. 트렁크 툴스 역시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규모 조직이 AI를 현장에 정착시키도록 교육과 변화 관리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다.

결국 이 회사의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보다 ‘현장을 아는 AI’에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건설 현장의 복잡한 정보 흐름을 정리하고, 비용과 안전, 일정 리스크를 함께 관리할 수 있다면 보수적인 산업에서도 AI 확산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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