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디지털 전환 전략의 핵심 축으로 인공지능(AI) 에이전트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지만, 기술적 야망과 실행 가능한 현실 간 간극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더큐브 리서치(theCUBE Research)가 발표한 ‘Agentic AI Futures Index’ 보고서는 AI 에이전트의 신뢰성과 운영 성숙도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를 통해 이 같은 현상을 조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62%가 AI 에이전트를 전략적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도입하고 있지만, 실제 업무에 적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디지털 노동 전환’과 관련된 성숙도는 5점 척도 기준에서 고작 3.1점에 불과했다. 전략적 구상은 활발하게 수립되고 있지만 정작 실행 지표는 1.8점에 그치며, 야심 찬 계획이 현장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실행력 부족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신뢰 부족이다. 기업들이 AI의 자동화 단계를 넘어서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결정 인텔리전스'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 AI 시스템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조사에 응한 기술 리더들의 절반 이하(49%)만이 “AI가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다섯 개 조사 항목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AI 전문 기업 두저.ai의 폴 차다(Paul Chada) 최고경영자(CEO)는 “예측은 결정이 아니다”라며 “AI가 목적, 맥락, 행동의 결과까지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반복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신뢰'가 축적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시스템이 단기적 업무를 완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다.

AI 에이전트의 도입은 여전히 필연적이라는 인식도 존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AI 경험이 있는 지도자층의 90% 이상이 디지털 코워커를 생산성 향상의 해답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해당 기술에 대한 투자 또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 내 협업 구조와 거버넌스 체계가 미숙한 탓에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큐브의 수석 분석가 크리스토프 베르트랑(Christophe Bertrand)은 “현재 디지털 코워커는 대부분 IT 부서의 기술 프로젝트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이는 전사적 인력 운영 전략이 수반되어야 할 ‘비즈니스 변화’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문화적 저항도 해결 과제 중 하나다. 기존 인력을 대체하려는 기술이 아닌, 인간과의 협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AI 도입 전략이 재조정되고 있는 만큼, 인사 부문과의 긴밀한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실리콘앵글(SiliconANGLE) 공동설립자인 존 퓨리어(John Furrier)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AI 시대에는 주저하는 기업들이 결국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AI 에이전트의 신뢰와 거버넌스 확보 없이 자율성과 ROI 확대는 어렵다는 것이 이번 보고서의 핵심이다. 업무에서 진짜 영향을 미치는 결정 권한을 AI에 부여하기 위해서는 설명 가능성, 컨텍스트 이해능력, 판단력에 대한 검증 체계부터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적 실행력을 갖추지 못한 채 기대만 쌓이는 현 상황은 AI 혁신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더큐브 리서치는 “AI 에이전트의 자율성은 결국 신뢰의 속도로만 움직일 수 있다”고 요약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많은 기업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린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