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채굴업체의 AI·고성능컴퓨팅(HPC) 계약 잔고가 1000억달러(약 137조6000억원)를 넘었지만, 실제 청구 중인 용량은 약 550MW에 그쳤다. 채굴업체의 기업가치가 채굴량보다 전력·데이터센터 확보와 매출 전환 능력에 따라 평가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CoinShares는 2026년 2분기 보고서에서 AI·HPC 계약을 보유한 상장 채굴업체의 평균 EV/선행매출 배수가 12.9배였다고 밝혔다. 계약이 없는 채굴업체의 평균 배수는 3.7배였다.
다만 계약 잔고가 현재 매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1000억달러가 넘는 계약 가운데 연환산 AI·HPC 매출로 연결된 규모는 약 11억달러(약 1조5140억원)에 그쳤고, 계약된 용량은 4GW를 넘었지만 실제 청구 중인 용량은 약 550MW였다.
계약 용량과 청구 용량의 차이는 AI 데이터센터 전환에 필요한 절차를 보여준다. 기존 채굴장에 전력과 부지가 있어도 GPU, 냉각시설, 변전설비, 네트워크와 전력 연결을 추가로 확보해야 실제 서비스가 가능하다.
전환 배경에는 채굴 비용 부담도 있다. CoinShares는 2026년 2분기 상장 채굴업체의 비트코인 1개당 가중평균 세전 현금원가를 약 7만5500달러(약 1억400만원)로 집계했다. 채굴업체가 이미 확보한 전력과 부지를 AI 데이터센터에 활용하려는 이유다.
반에크는 2026년 6월 보고서에서 AI 인프라 전환 기업의 단기 자금조달 필요액을 약 500억달러(약 68조8000억원), 장기 자본 필요액을 약 2210억달러(약 304조960억원)로 추산했다. 전환 과정에서 계약 확보뿐 아니라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반에크는 임대 계약을 확보한 기업이 전력 용량 기준 10배를 넘는 배수를 적용받는 반면, 계약이 거의 없는 기업은 2~6배 수준에서 거래된다고 분석했다. 시장이 채굴량뿐 아니라 전력망 접근성과 데이터센터 전환 가능성을 함께 평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에크는 계약 체결 자체보다 정해진 일정과 예산에 맞춰 용량을 공급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계약이 실제 매출로 전환되는 시점과 공급 이행 여부가 기업가치 평가의 다음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코어사이언티픽($CORZ)은 전환 사례로 거론된다. 회사는 2026년 2분기 콜로케이션 매출 1억3670만달러(약 1881억원)를 기록했고, 전체 임대 고객 전력 용량을 약 1.1GW로 늘렸다고 밝혔다.
코어사이언티픽은 AMD와 최대 2.5GW 규모의 임대 가능 용량을 지원하는 협력을 발표했다. 또 5개 사이트의 약 530MW 규모 15년 계약을 기반으로 140억달러(약 19조2600억원) 이상의 잠재 기본 계약 매출을 제시했다.
회사가 제시한 140억달러는 현재 매출이 아니라 계약에 기반한 잠재 규모다. 코어사이언티픽은 전체 임대 고객 전력 용량을 기준으로 240억달러(약 33조2400억원) 이상의 잠재 계약 매출도 제시했으며, 7월 중순 기준 437MW에서 청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본지는 앞서 채굴업체의 AI·HPC 전환에서 전력과 부지 확보가 핵심이라는 점을 다뤘다. 기존 채굴장에 연결된 전력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전환 비용과 일정에 영향을 주지만, 전력 확보만으로 매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계약의 질을 판단하려면 계약 금액 외에도 실제 청구 중인 MW, 계약 기간, 고객의 신용도, 선급금 여부와 건설 진행 상황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장기 계약의 총액과 실제 인도·청구된 용량은 같은 기준의 수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자가 해외 상장 채굴업체를 볼 때도 같은 구분이 필요하다. AI·HPC 계약 발표만으로 사업 전환이 완료됐다고 판단하기보다 계약 용량과 실제 과금 매출, 자금조달 규모를 나눠 살펴봐야 한다.
현재 확인된 수치는 계약 잔고와 실제 매출 사이에 큰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기업가치 평가는 AI 계약을 발표했는지보다 계약 용량을 실제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전환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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