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가상자산사업자에 적용되는 부채비율 규제가 시행되면서, 국내 신고 사업자 절반 이상이 기준을 맞추지 못해 사업 지속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새 규제는 재무 건전성이 지나치게 취약한 사업자의 시장 진입과 존속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업황 침체가 길어진 상황에서는 중소 사업자들에게 사실상 생존 시험대로 작용하고 있다.
30일 전자공시시스템과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재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상자산사업자 24곳 가운데 12곳의 부채비율이 200%를 넘었다. 부채비율은 기업 자본 대비 빚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지표인데, 200% 이하는 자기자본의 두 배 이하 수준으로 빚을 관리하라는 뜻이다. 기준을 넘긴 업체들 상당수는 부채총액이 자산총액보다 많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고, 여기에 재무제표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과거 분기 기준으로 같은 상태였던 4곳까지 더하면 최대 16곳이 기준 미달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된 전체 가상자산사업자 28곳의 57%에 해당한다.
이 규제는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8월 20일부터 적용된다. 가상자산사업자 본인뿐 아니라 대주주도 최근 분기 말 재무제표 기준으로 부채비율 200% 이하를 충족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제도 안착을 위해 1년의 준비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그 기간이 지난 뒤 기준을 맞추지 못한 사업자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제도 방향 자체는 자금력이 약한 사업자를 걸러내고, 이용자 피해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사업자별 사정은 엇갈린다. 국내 원화거래소 4곳인 업비트, 빗썸, 코인원, 디지털 엑스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라 이용자 예치금을 부채에서 제외해 계산하면 모두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디지털에셋, 한국디지털자산수탁, 인피닛블록, 블로세이프 같은 수탁사와 헥토월렛원, 안랩블록체인컴퍼니 등 지갑사업자, 디에스알브이랩스와 하이퍼리즘도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반면 고팍스는 현재 완전 자본잠식 상태지만,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 관련 피해 대금 문제가 정리되면 부채비율도 함께 개선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다수 중소 사업자가 단기간에 재무구조를 고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거래 부진이 이어지고 있고, 법인 시장 개방이나 디지털자산기본법 같은 제도 정비도 아직 끝나지 않아 매출을 빠르게 늘릴 여건이 부족하다. 업계에서는 외부 투자 유치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많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업체는 국내 금융사나 외국 자본과 신규 투자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가상자산 산업이 소수 대형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동시에 규제 강화만으로는 산업 기반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에서 제도 정비와 시장 개방 논의도 함께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