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카이치 내각이 정부 지출로 경제 규모를 키우는 이른바 ‘사나에노믹스’를 추진하고 있지만, 장기금리 상승과 중소기업 도산 증가가 정책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시아경제는 이승재 iM증권 연구원의 분석을 인용해 다카이치 내각의 경제정책이 아베노믹스와 달리 명목 국내총생산(GDP) 확대에 더 무게를 둔다고 보도했다. 일본은행의 초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에 크게 기대던 방식보다 정부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양자기술 등 전략 분야에 재정을 투입해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구상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승재 iM증권 연구원은 “아베노믹스와 사나에노믹스의 다른 점은 명목 GDP에 있다. 다카이치 내각은 경제의 규모 자체를 늘리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분을 포함한 경제 전체의 몸집을 키워 세수와 투자 여력을 함께 늘리려는 접근이라는 뜻이다.
아베노믹스는 일본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기업과 가계가 지출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 재정과 구조개혁도 병행했지만 정책의 중심축은 초저금리와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었다.
사나에노믹스는 정부가 전략적 투자에 먼저 돈을 넣고 기업 투자를 끌어내 명목 GDP를 키우는 방식에 가깝다. AI와 스타트업, 양자기술 같은 첨단산업에 재정을 집중해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지난 7월 경제재정 운영과 개혁 기본방침을 발표하면서 2027년 이후 매년 10조엔 규모의 추가 재정지출을 예정했다. 기본방침에서 ‘재정 건전화’라는 표현이 빠지면서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도 커졌다.
확장재정 지지 논리는 빚을 줄이는 속도보다 경제 전체의 성장 속도를 높이는 데 있다. 명목 GDP가 커지고 세수가 늘면 국채 발행과 이자비용 증가 부담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연구원은 “일본 확장재정 지지파는 실질 GDP는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명목 GDP를 늘린다면 국채 발행과 이자비용 증가를 세수 확대로 일정 부분 상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재정정책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기간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에 묶였던 일본 경제의 방향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복병은 금리다.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6일 장중 2.830%까지 올랐다. 1996년 10월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기금리는 기업 차입비용과 정부 이자비용에 직접 영향을 준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민간 투자를 끌어내려 해도 조달금리가 높아지면 기업이 빚을 내 설비투자에 나설 유인은 줄어든다.
일본은행의 금리 정상화도 정책 환경을 바꾸고 있다. 초저금리 시기에는 정부 지출 확대와 기업 투자 유도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쉬웠지만, 금리가 오르면 국채 발행 확대 기대가 장기금리를 다시 밀어 올릴 수 있다.
이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사나에노믹스가 투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라면 장기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들의 입장에서 고금리 상태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할 유인이 적어지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의 체력도 약해졌다. 일본 기업 도산은 지난해 1만300건으로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1~7월 도산 건수는 637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1% 늘었고, 자본금 5000만엔 이상 기업의 도산은 200건 미만에 그쳐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난도 부담이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기업 도산은 2021년 56건에서 지난해 427건으로 약 8배 늘었다. 임금 상승 압력 속에서 구인난을 견디지 못한 영세기업의 붕괴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독자에게 이 사안은 일본 내부의 재정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장기금리 상승은 엔화와 아시아 자금 흐름, 위험자산 선호에 영향을 줄 수 있고, AI와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에 대한 정부 주도 투자 확대는 한국의 차세대 첨단산업 육성 구상과도 비교 대상이 된다.
이 연구원은 “결국 파이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으로 고른 성장의 여부도 사나에노믹스를 바라보는 기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 투입 규모보다 그 돈이 실제 민간 기업의 투자 확대와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는지가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