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원유 수출 물류가 홍해 남단 바브엘만데브를 피하는 북행 루트로 옮겨가고 있다. 후티의 해상 봉쇄 선언 이후 이집트 아인수크나와 시디케리르를 거치는 수에즈·지중해(SUMED) 파이프라인 경로의 비중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후티는 7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해상 봉쇄를 선언했다. 이후 사우디 서부 얀부에서 실은 원유를 홍해 북쪽으로 보내 이집트 아인수크나에서 내리고, SUMED 파이프라인으로 지중해 시디케리르까지 옮긴 뒤 다시 선적하는 방식이 부각됐다.
케이플러(Kpler)는 8월 첫째 주 시디케리르 출항 물량이 기록 수준인 하루 240만 배럴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이 가운데 약 하루 70만 배럴은 태국·인도·필리핀 등 아시아로 향했다.
같은 분석에서 8월 들어 바브엘만데브를 지나는 사우디 원유 통과량은 거의 0에 가까워진 것으로 제시됐다. 남쪽 해협을 통과해 아시아로 직접 향하던 흐름이 북쪽 이집트 환적 경로로 분산된 셈이다.
다만 이번 변화는 단순한 수출 확대보다 경로 재배치에 가깝다. 시디케리르 적재 물량 전체가 사우디 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로이터(Reuters)는 사우디아람코(Aramco)가 7월 23일 시디케리르에서 추가 원유 화물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해당 항만의 전체 적재 물량을 곧바로 사우디 수출로 볼 수는 없다고 짚었다.
시디케리르는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 인근의 지중해 원유 터미널이다. 사우디 원유는 홍해 쪽 아인수크나로 운송된 뒤 SUMED 파이프라인을 거쳐 이곳에서 다시 선적될 수 있다.
이 경로는 홍해 남단 바브엘만데브를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물류 리스크를 낮춘다. 앞서 본지도 아시아 정유사들이 사우디 원유 인도 지점을 시디케리르로 바꾸는 방안을 사우디아람코와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류 부담은 커졌다. 케이플러는 희망봉을 도는 대체 항로가 왕복 기준 약 40일을 더한다고 분석했다. 통상 얀부에서 인도 서해안까지 약 8일 걸리는 항로와 대비된다.
항해 기간이 길어지면 선박 회전율이 떨어지고 운임 부담도 커진다. 원유 구매자 입장에서는 물량 확보뿐 아니라 도착 일정과 운송비를 함께 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시아 시장의 반응은 제한적이다. 로이터는 8월 18일 시디케리르에서 아시아로 실릴 중동산 원유가 이달 약 하루 67만 배럴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 등 아시아 고객은 긴 항해와 높은 운임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본지가 앞서 짚은 사우디 원유 조달에서 가격과 경로를 함께 따지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전체 배정량이 늘어도 개별 정유사의 조달 판단은 가격 조건, 운송 경로, 대체 공급의 할인 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추적 데이터의 불투명성도 커졌다. 로이터는 8월 12~18일 얀부 적재가 모두 자동식별장치(AIS)를 끈 ‘다크’ 상태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같은 시점 얀부 적재량을 두고 보텍사(Vortexa)는 하루 238만 배럴, 케이플러는 하루 178만 배럴, AXSMarine은 하루 85만 배럴로 각각 추정했다. 단기 수치 하나로 경로 재편의 규모를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사우디아람코는 2분기 실적 공시에서 동서 파이프라인을 계속 활용해 네트워크 전반의 흐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현재 확인되는 변화는 남쪽 바브엘만데브 회피와 북쪽 수에즈·SUMED 활용 확대이며, 향후 흐름은 운임, 항해 시간, 선박 추적 공백을 함께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