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가 상품 판매에 의존한 자금 조달 구조를 벗어나려면 자금조달계약 제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조영현·박희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23일 '보험회사 자산운용 기반 강화를 위한 제도 검토 : 자금조달계약' 보고서에서 미국 대형 생명보험사가 자금조달계약을 발행해 다양한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금조달계약은 보험사가 발행 시점에 부채의 만기와 규모를 정해 조달할 수 있는 도매 자금조달 수단이다. 보험사는 자금조달계약을 특수목적기구(SPV)에 발행하고, SPV는 이를 기초자산으로 유가증권을 발행해 기관투자자에게 판매한다.
보험사는 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뒤 운용 수익과 조달 비용의 차이에서 스프레드 수익을 얻는다. 상품 판매를 통해 들어온 보험료만 운용하는 구조보다 조달 경로를 넓힐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미국 생명보험사의 자금조달계약 기반 유가증권 발행 잔액은 2018년 말 875억 달러(약 121조원)에서 지난해 말 2808억 달러(약 389조원)로 3배 이상 늘었다. 원화 환산에는 1달러당 1385원을 적용했다.
보고서는 국내 보험사가 현재 상품 판매로 확보한 자금을 운용해 스프레드 수익을 얻는 구조라고 짚었다. 국내 보험영업 시장이 포화 상태에 놓이면 보험영업 정체가 투자영업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보험사의 자본 건전성과도 맞물린다. 본지는 앞서 보험사의 초장기채 매수 여력과 지급여력 부담이 함께 거론된 흐름을 전한 바 있다.
지급여력은 보험사가 장래 보험금 지급 의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자금조달계약을 도입하더라도 조달 규모와 만기, 운용 자산의 위험이 자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금조달계약은 투자 재원을 넓히는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위험도 함께 따른다. 보고서는 자금조달계약이 스프레드 수익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역마진 위험 등 일반적인 스프레드 사업 리스크가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역마진은 조달 비용이 운용 수익을 웃도는 상황을 뜻한다. 금리와 신용 여건이 바뀌면 보험사가 예상한 스프레드가 줄거나 손실로 전환될 수 있다.
조영현·박희우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충분한 지급여력과 리스크관리를 갖춘 보험사에만 자금조달계약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도 도입 대상을 모든 보험사로 넓히기보다 건전성과 관리 역량을 기준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다.
두 연구위원은 변제순위와 예금자 보호 여부 등에 대한 논의도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자금조달계약이 보험계약자 보호 체계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정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도 도입 논의의 핵심은 보험사의 투자 여력을 넓히는 문제와 계약자 보호 장치를 어떻게 맞출지에 있다. 보고서는 자금조달계약 도입으로 신성장 동력 확보, 생산적 금융 참여 여력 확대, 산업 경쟁력 강화, 자본시장 발전 기여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도입 여부는 지급여력, 리스크관리, 변제순위, 예금자 보호 논의가 함께 정리돼야 판단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이 조건을 갖춘 보험사에 한해 제도 도입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결론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