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이 은행 예금을 대체하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이 대출시장과 실물경제에 전달되는 경로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현재 스위스 내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시장이 커질 경우 은행 중개 기능과 통화정책 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페트라 취딘(Petra Tschudin) 스위스국립은행(SNB) 이사회 구성원은 9월 30일 취리히에서 열린 행사에서 “대형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2단계 금융 시스템과의 낮은 연계성은 통화정책 전달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스위스 매체 보도와 행사 발표자료를 통해 전해졌다.
통화정책 전달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변화가 상업은행의 대출·예금 금리와 가계·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통화정책은 중앙은행과 상업은행, 실물경제 사이의 금융 경로를 통해 작동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특정 자산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이다. 이용자가 은행 예금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면 은행이 대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예금이 줄어들 수 있고, 그 결과 기준금리 변화가 대출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스위스은행협회는 2025년 보고서에서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은행의 대출 공급과 통화정책 전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금성 자산이나 단기 금융상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바뀌는 경우에는 은행 예금과 대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는 대형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시스템과 분리된 채 결제와 자금 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키울 때 더 뚜렷해질 수 있다. SNB는 결제 혁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2단계 금융시스템 밖에서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할 경우 정책금리 전달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SNB는 스테이블코인의 지급결제 활용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스테이블코인은 국경 간 송금 비용을 낮추고 24시간 결제와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를 지원할 수 있다.
한스 게르바흐(Hans Gersbach) 취리히연방공대 KOF 경제연구소 공동소장은 달러 연동형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면 새로운 금융 인프라에서 달러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제 효율성의 확대가 통화 주권과 금융시스템의 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SNB의 2026년 금융안정보고서는 스위스 내 스테이블코인을 아직 ‘틈새 현상’으로 평가했다. 거래 규모가 작아 현재 금융 안정성 위험은 크지 않지만, 이용이 확대되면 관련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스테이블코인이 통화권 밖에서도 발행·유통될 수 있는 만큼 국제적인 규제 공조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시장 구조상 스테이블코인의 영향은 발행 규모뿐 아니라 준비자산과 이용자의 자금 이동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은행 예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는지, 기존 현금성 자산이나 단기 금융상품이 바뀌는지에 따라 은행 대출과 중앙은행 정책의 파급 효과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스위스 정부는 2025년 10월 금융기관법 개정안에 대한 공개협의를 시작했다. 개정안에는 ‘payment instrument institution’이라는 새로운 인가 체계를 도입하고 특정 유형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개협의는 2026년 2월 6일까지 진행됐다.
다만 최종 법률의 시행 여부와 시점은 별도로 확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내용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전면 허용하거나 금지한 최종 규정이 아니라 공개협의 단계의 제도 개편안이다.
SNB는 민간 스테이블코인과 별도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헬베티아는 금융기관 간 토큰화 자산 결제에 도매형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활용하는 사업이다.
프로젝트 헬베티아는 최소 2028년 6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SNB는 이 사업이 도매형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의 상시 도입을 결정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번 논의는 스테이블코인의 즉각적인 금지나 규제 시행보다 시장 확대에 따른 은행 예금, 지급결제망, 중앙은행의 금리 전달 경로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위스에서는 금융기관법 개정안의 최종 처리와 스테이블코인 이용 확대 속도가 다음 정책 논의의 기준이 될 예정이다.

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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