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봄, 경기도 이천시. 현대전자 사옥의 공기는 낯설 만큼 건조했다. 갓 입사한 스물셋 나이의 청년, 어준선은 배치표를 들고 복도를 걸었다. 고려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북유럽표준인 NMT-900(Nordic Mobile Telephony)'카폰 개발'이었다.
카폰.
지금처럼 손바닥 위에 안에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의 기기가 아니었다. 벽돌만 한 몸집에 군용 무전기처럼 묵직했다. 자동차 트렁크에 장비를 싣고, 운전석 옆에 수화기를 달아야 했다. 그 시장을 장악한 건 미국의 거인 모토로라(Motorola)였다. 한 대 가격이 500만 원. 그의 신입 연봉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당시 한국의 이동통신은 1세대 아날로그 방식, AMPS 계열이 전부였다. 카폰은 1984년에야 국내에 들어왔고, 부유층과 대기업 임원들만이 심사를 거쳐 사용할 수 있는 신분 상징물 같은 존재였다. 기술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나라에서 삼성전자, 금성통신, 그리고 현대전자가 국산 카폰 개발에 뛰어들었다. 금성통신이 나중에 LG전자로 사명이 바뀐다.
1986년, 삼성전자는 국산 최초 자체개발 카폰 SC-1000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실패였다.
절치부심 끝에 1989년, 삼성은 SH-100을 출시했다. '벽돌폰', '냉장고폰'이라 불린 그 전화기는 평균 월급 64만 원 시절에 한 대 가격이 165만 원이었다. 무겁고 컸으며 고장도 잦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모토로라를 선택했다.
어준선이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잔혹했다. 한국이 과연 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그러나, 현대전자의 NMT-900 카폰개발팀은 달랐다. 기술이 부족한 상황해서도 어려운 환경에서도 강인한 정신력과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90년대 초에 한국기업 최초로 북유럽국가에 수출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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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토큰포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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