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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근영 칼럼] AI 폭풍과 닷컴 버블의 추억

요즘 세계는 온통 AI에 넋이 나간 것 같다. 모든 산업, 모든 회사가 당장이라도 AI를 도입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곧 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1999년에서 2000년, 인터넷 붐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닷컴'이라는 이름 하나만 붙여도 상장기업의 주가가 수십 퍼센트씩 뛰는 기현상을 목격했다. 벤처 붐이 불자 TV 연속극 대사에까지 벤처가 등장했다. 지인이 "당신 아들은 뭐 하느냐"고 묻자 어느 부인이 "우리 아들은 벤처회사에 다닌다"며 자랑하던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닷컴 버블이 하늘까지 치솟던 시절, IT 분야 회사라면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든 하드웨어 판매 회사든, 상장조차 되지 않은 비상장 회사 주식이라도 기업 가치와 상관없이, 회사 재무구조가 손실이든 아니든 따지지 않고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때 태어난 비상장 주식 거래 사이트 38커뮤니케이션은 아직도 건재하여 당시의 버블을 기억하게 한다.

199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닷컴 버블은 골드뱅크, 새롬기술 등이 마치 우리 재계에 새로운 대그룹이 탄생하는 듯 수많은 투자자의 돈을 빨아들이며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 냈고, 이듬해 여름이 오기 전 열풍이 가라앉으며 수많은 투자자 피해를 남겼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2000년에 거품은 터졌지만 인터넷 자체는 그 후 20년간 세상을 전부 바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는 버블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실력을 쌓던 아마존과 구글(우리나라에서는 이메일로 자리를 잡은 다음과 검색으로 자리를 잡은 네이버가)이 다 가져갔다. 거품은 꺼져도 기술은 남는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류에게 AI 붐을 몰고 온 것은 2022년 말 ChatGPT의 등장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선제 타격이었다. OpenAI가 ChatGPT를 공개하자 마이크로소프트(MS)는 1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발표하고 검색엔진 Bing에 AI를 결합하며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구글은 이에 대응해 대화형 AI Bard(현 Gemini)를 서둘러 공개했다. 2023년 봄 OpenAI가 멀티모달 모델 GPT-4를 내놓으며 기술 격차를 벌려 나갔고, 이 무렵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조용히 얼굴을 내밀었다.

메타(Meta)는 Llama 1과 2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개발자 생태계를 포섭해 폐쇄형 AI 독점 진영을 견제하는 전략을 폈다.

2023년 겨울에는 구글이 딥마인드 역량을 집결한 차세대 모델 Gemini 1.0과 1.5를 공개하며 본격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2024년 3월 4일, 앤트로픽이 Claude 3(Haiku, Sonnet, Opus) 라인업을 공개했다. 최고 성능 모델인 Claude 3 Opus는 학술 벤치마크(MMLU, 코딩, 수학 등)에서 당시 최강이던 GPT-4를 다방면에서 앞서는 결과를 보여주었고, AI의 실전 성능을 측정하는 글로벌 블라인드 평가인 LMSYS 챗봇 아레나에서 같은 달 26일 GPT-4를 누르고 종합 랭킹 1위에 올랐다. 'ChatGPT 독주'가 깨진 첫 공식 순간이었다.

이후 OpenAI는 실시간 음성·시각 대화가 가능한 GPT-4o를, MS는 온디바이스 AI 규격인 Copilot+ PC를 선보이며 반격했고, OpenAI와 엔스로픽은 지금 현재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추론(Reasoning) 모델의 등장과 자율 에이전트의 부상으로 일반 사용자들의 관심이 확 높아진 것은 2024년 하반기부터다. 단순 텍스트 생성을 넘어 복잡한 문제를 단계별로 생각하는 '추론 모델'(OpenAI o1, o3 등) 경쟁이 본격화되었고, AI가 직접 컴퓨터를 조작하고 과업을 수행하는 '자율형 에이전트(Agentic AI)'와 Deep Research 기술이 핵심 주류로 떠올랐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의 모든 기업은 물론 개인들까지 AI를 도입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경쟁자에 뒤질 것 같은 다급함에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며 AX 전환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이 과정을 돌아보며, AI 도입을 너무 서두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뒤늦게 출발한 선수가 오히려 앞서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지켜본 기억에서 나온 결론이다.

벌써부터 많은 AI 전문가들이 "AI 도입으로 일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고, 잠시라도 손을 떼면 행여 그 시간에 경쟁자에 뒤질까 걱정되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한다.

한때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해 봤지만 단타로 수익을 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판단에 자문사를 접은 경험에서 충고를 하나 한다면, AI는 천천히, 꼭 필요한 단순한 AX부터 시작하는 회사일수록 매몰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며 투자는 손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깔고 앉아야 한다는 찰리멍거의 이야기를 비유로 전해주고 싶다.

물론 SW 개발에 AI를 이용하는 것은 맞다. 문서 작성이나 대규모 자료 정리 같은 업무에 AI를 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어디까지나 사업의 보조 수단이지 사업체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기업의 본질 업무는 따로 있다.

그 본질 업무, 즉 기업 본업의 체질을 바꾸고 사업 자체를 전환하는 영역에 AI를 투입하는 일은 결코 서두를 일이 아니다.

지금은 길게 보고 AI 도입의 효과에 대한 검토를 충분히 끝낸 뒤, 타 기업의 사례를 참조하여 서서히 방향 설정을 제대로 한 후 본격적으로 Ax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닷컴 버블이 그것을 증명했다. 광풍에 올라탄 자가 아니라, 거품 속에서 조용히 방향을 잡은 자가 그 다음 20년을 가져갔다.

주식회사 촌 대표이사 신 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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