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된 회계 스타트업, 'AI 거품' 없이 실용성으로 돌파하다

감각적인 신기술이나 거대한 비전을 내세우지 않고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AI 기반 회계 자동화 플랫폼 ‘데이터스니퍼(DataSnipper)’다. 이 기업은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 사소해 보이지만 고질적인 문제를 정확히 파고들며 세계 시장을 사로잡았다.

기업 초기, 데이터스니퍼는 ‘감사(Audit) 소프트웨어’라는 비인기 영역을 택했다. 벤처캐피털 조차 시장 규모가 작다며 외면했지만, 이들은 고리타분한 문서 작업에 매몰된 회계사들의 반복 업무를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화려한 기술보다 현장의 불편함을 제대로 해결한 것이 글로벌 확장의 출발점이 됐다.

제품 전략도 남달랐다. 별도의 플랫폼으로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기보다는 그들이 이미 사용하는 도구, 즉 마이크로소프트(MSFT)의 엑셀에 소프트웨어를 직접 삽입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유용성을 더한 덕에 도입 장벽은 낮았고, 회계사들은 즉각적인 편의성과 성능 개선을 체감했다.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충성도로 이어졌다. 특히 현장 업무에 직접 투입되는 주니어 회계사들이 제품 전도사 역할을 하며 양방향 입소문이 확산됐다. 그들이 이직할 때마다 새 회사로 제품을 추천했고, 이에 따라 기업은 내부 감사, 세무, 공공 부문 등 인접 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제품 개발과 조직 운영에서도 고객 중심 전략이 일관되게 유지됐다. 단순한 의견 수렴을 넘어서 고객 출신 인재를 채용하고,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감 있는 제품 개발에 반영했다. 이는 타깃 고객층과의 완벽한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만들었다.

글로벌 시장 공략 역시 세심한 현지화 전략이 뒷받침했다. 현재 데이터스니퍼는 170개국 이상에서 제품을 제공하며, 각국의 언어와 업무 문화 차이를 능숙하게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아랍권의 문서 방향성이나, 유럽과 미국 간 숫자 표기법 차이, 일본의 업무 관행 등 복잡한 요구사항을 로컬 인재를 통해 정밀하게 대응하고 있다.

성장 속도가 빠름에도 외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은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데이터스니퍼는 지금껏 한 차례의 주요 자금 유치 없이 수익성 중심의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이는 고성장을 위해 반드시 대규모 벤처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흥미로운 반례로 평가받는다.

이들이 추구한 건 '혁신'이라는 이름의 과잉이 아닌, 직접 이용자 곁에서 가치를 실현하는 실용성 자체였다. 그런 점에서 데이터스니퍼의 사례는 AI나 핀테크처럼 과열된 키워드에 집착하지 않고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스니퍼의 CEO 비드야 피터스(Vidya Peters)는 마케타의 COO, 뮬소프트의 CMO, 인튜잇의 리더십 경력을 거친 베테랑이다. 그녀는 데이터 중심 문화와 운영 효율을 강조하며 100억 원 규모의 성장 자금을 유치했고, AI 기반 플랫폼 업링크를 인수한 바 있다.

폼보다는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B2B SaaS 전환의 교과서를 다시 쓴 셈이다. AI 열풍 속에서 산업별 특화 솔루션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데이터스니퍼는 거품을 걷어낸 실리 중심 기술기업의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