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트러스트 보안과 인공지능의 융합이 기업의 정체성 관리 방식을 뒤집고 있다. 자율성을 갖춘 '에이전트형 AI'의 등장은 기존 인증 체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 변화 속도는 기업 보안팀에 전례 없는 위협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오크타(Okta)의 최고 보안 책임자 데이비드 브래드버리(David Bradbury)는 최근 사건들을 예로 들며, 이같은 변화가 단순한 개념적 논의가 아닌 실제 보안 사고로 현실화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올해 오크타의 연례 행사인 옥테인(Oktane)에서 브래드버리는 사람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그리고 비인간 정체성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보안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에이전트 형 AI는 고속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보안 프레임워크에선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로 트러스트 보안의 세 가지 축인 안전한 정체성 확보, 최소 권한 원칙,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AI 에이전트에도 반드시 적용돼야 함을 역설했다.

빠른 AI 도입이 임원진과 이사회 차원에서 강요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보안보다는 속도를 우선시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브래드버리는 “정체성 토큰을 하드코딩하거나 만료되지 않는 API 키를 사용하는 과거의 나쁜 습관이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이는 보안상의 재앙”이라고 지적했다. AI 에이전트 사이의 무분별한 토큰 공유, 이른바 '토큰 스프롤(token sprawl)' 현상이 가중되며, 개별 서비스가 아닌 전체 시스템이 위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브래드버리는 액세스 맥락 관리가 AI 시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AI가 다양한 시스템 간 민감한 데이터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어떤 정보는 보호돼야 하고 무엇을 공유할 수 있는지 세밀히 구분해야 한다. 그는 이 과정을 데이터 흐름 내 '콘텍스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며, 이때 'MCP(Mediation Context Protocol)' 같은 새로운 접근이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위협은 기술만큼이나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로컬 기반의 대규모 언어모델을 활용한 악성코드, 피싱 공격, 정교하게 조작된 웹사이트 등 새로운 수법이 실시간으로 등장하는 만큼, 업계 전반의 정보 공유와 협력이 절실하다. 브래드버리는 새로운 공격 패턴을 블로그, 협업 툴, 산업별 보안 네트워크 등을 통해 즉각적으로 공유할 것을 모든 보안 담당자에게 촉구했다.

현재 보안 산업은 AI의 급진적인 진보와 동시에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접근 방식, 특히 제로 트러스트 모델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크타는 이를 위해 AI 에이전트의 수명 주기를 관리하고 다양한 시스템 접근을 연결하는 ‘아이덴티티 패브릭’ 솔루션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들이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고 정체성 보안을 혁신하느냐가 AI 도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