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NVDA)가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17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대만반도체제조(TSMC)의 아리조나 팹에서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블랙웰(Blackwell)’의 양산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생산 돌입은 고성능 컴퓨팅 시장에서 미국 중심의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자국 생산을 확대하려는 미국 정부의 산업 정책 방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로, 지난해 피닉스 인근에 첫 제조시설을 완공했다. 이곳에서는 현재 4나노 공정 기술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TSMC의 최신 2나노 공정보다는 두 세대 뒤처진 기술이다. 애플(AAPL)이 지난해 말부터 이 시설을 활용해 아이폰용 A16 바이오닉 칩을 생산했으며, 이번에는 엔비디아가 주요 고객으로 추가된 셈이다.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는 이날 공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생산된 최초의 블랙웰 웨이퍼에 서명하며 이같은 전환점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현대 산업 역사상 AI 칩처럼 중요한 반도체가 이처럼 최첨단 설비에서 국내에서 제조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블랙웰 아키텍처는 이전 세대 ‘호퍼(Hopper)’보다 성능과 효율성 모두를 크게 개선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대형 언어모델 처리에 최적화된 트랜스포머 엔진과, 데이터베이스 질의를 가속하는 디컴프레션 엔진 등의 기능이 새로 추가됐다. 최상급 제품인 블랙웰 울트라는 AI 연산에서 무려 15페타플롭스의 연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 칩은 최근 출시된 DGX 스파크 워크스테이션 등에도 탑재된다.

TSMC는 이번 미국 시설 외에도 아리조나에 추가로 두 곳의 팹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 중 하나는 차세대 2나노 후속 'A16 노드'를 적용할 예정이며, 향상된 전력 전달 및 나노시트 트랜지스터 기술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엔비디아는 아리조나 지역에서 칩 패키징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이를 위해 앰코 테크놀로지와 SPIL 등과 협력하는데, 이 공정은 복수의 연산 칩과 HBM 메모리를 단일 패키지로 통합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다.

또한 엔비디아는 텍사스에서 두 곳의 AI 슈퍼컴퓨터 제조시설을 신설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자사 AI 시스템인 DGX 시리즈 슈퍼컴퓨터의 국내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향후 12~15개월 이내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고성능 AI 칩 생산이 미국 내에서 본격화되면서, 엔비디아와 TSMC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단순한 위탁생산을 넘어 근본적인 공급망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국 주도의 기술 자립도를 선도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