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 적용되는 세계 최초의 규제 프레임워크인 ‘암호자산시장 규정(MiCA)’을 본격 시행했지만, 탈중앙화금융(DeFi)에 대한 정의는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규제당국은 2026년부터 DeFi를 본격 규제 대상으로 삼을 준비에 나섰지만, 탈중앙화의 법적 정의조차 명확히 내려지지 않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MiCA는 투자자 보호 강화, 사기 방지,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관리 등 다양한 목적을 담아 지난해 12월 30일 정식 발효됐다. 그러나 법령의 최종 이행 단계에 돌입한 지금, 유럽 정책당국은 기존 중앙화 서비스에 적용했던 규제의 틀을 DeFi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 암호화폐 단체 EUCI의 정책 담당인 비아라 사보바(Vyara Savova)는 최근 코인텔레그래프 ‘체인리액션’ 방송에서 “DeFi는 현재 법적인 공백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사보바에 따르면 DeFi는 이론적으로 MiCA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여기서 말하는 탈중앙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규제당국은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2026년 중반부터는 EU 당국이 탈중앙화의 법적 기준을 정의하기 위한 논의에 본격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초기 MiCA는 DeFi 플랫폼에도 기존 금융기관과 동일한 면허 및 고객확인(KYC) 요건을 부과하면서 관련 업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조항에서는 ‘완전히 탈중앙화된’ 암호자산 서비스 제공자는 MiCA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예외 규정을 명시하기도 했다.
한편 MiCA를 보완하는 차기 법령, 일명 ‘MiCA 2’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FTX 사태 이후 이를 공론화한 바 있지만, EUCI의 마리나 마르케지치(Marina Markezic) 이사는 “MiCA 2는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녀는 대신 스테이블코인 등 특정 사안에 대한 국지적인 입법 수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탈중앙화의 개념과 범위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MiCA의 효력이 과연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 DeFi 프로젝트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