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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거래량 500억 원.
국내 투자자들이 코인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보는 숫자 중 하나다. 거래량이 많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고판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그 코인에 실질적인 수요가 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숫자의 상당 부분이 사람이 아닌 봇이 만들어낸 허수라면 어떻게 될까.
■ NBER이 밝힌 충격적인 수치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가 발표한 연구 'Crypto Wash Trading'은 비규제 암호화폐 거래소 29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거래소에서 보고된 거래량의 평균 70% 이상이 워시 트레이딩(wash trading), 즉 허위 거래였다고 밝혔다.
워시 트레이딩이란 같은 주체가 자신이 보유한 지갑끼리 코인을 사고팔며 거래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행위다. 주식시장에서는 1936년부터 미국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시장 조작의 일종이다. 연구팀은 2020년 1분기 기준 현물시장에서만 4조 5,000억 달러, 파생상품 시장에서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워시 트레이딩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했다.
코넬대학교, 뉴캐슬대학교, 칭화대학교 연구팀이 공동으로 수행한 이 연구는 2022년 발표됐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6년 최신 집계에 따르면 DEX(탈중앙화 거래소) 유동성 풀의 67%에서 워시 트레이딩 활동이 감지됐고, DEX 전체 거래량의 13%가 워시 트레이딩으로 추정된다.
■ 거래량 부풀리기는 이미 서비스 상품이 됐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행위가 음지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인터넷에는 코인 프로젝트를 위한 '볼륨 봇' 서비스가 공개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솔라나 기반 볼륨 봇 서비스 중 하나는 웹사이트에서 이렇게 홍보한다. "24시간 내 10만 달러 거래량 생성에 0.212 ETH." 수십만 원을 내면 원하는 만큼의 거래량 숫자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DexScreener나 코인게코 트렌딩 목록에 올라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거래량이 필요하고, 거래량이 많은 코인일수록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다는 심리를 이용한 비즈니스다.
거래소 입장에서도 워시 트레이딩은 단기적으로 이익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거래소 거래량은 코인마켓캡 같은 데이터 사이트의 거래소 순위에 최대 46계단까지 영향을 미친다. 순위가 높은 거래소일수록 더 많은 프로젝트가 상장을 원하고 더 많은 투자자가 유입된다. 거래량을 부풀릴 동기가 거래소와 프로젝트 양쪽에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 진짜 거래량과 가짜 거래량은 어떻게 다른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구분 기준은 명확하다. 진짜 수요는 인센티브가 사라져도 남는다. 가짜 활동은 보상이 끊기는 순간 증발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진짜 거래량은 서로 다른 지갑에서, 서로 다른 시간대에, 다양한 규모로 거래가 발생한다. 코인 가격이 오르내려도 거래 패턴이 유지된다. 반면 가짜 거래량은 동일한 지갑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거래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균일하며, 가격 변동과 무관하게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NBER 연구팀이 워시 트레이딩을 감지하는 데 활용한 핵심 지표도 이것이었다. 숫자의 첫 번째 유효숫자 분포(벤포드의 법칙), 거래 규모의 이상한 집중, 비정상적인 거래량 분포가 조작의 흔적을 드러낸다.
온체인 데이터에서는 추가 단서가 있다. 실제 수요가 있는 코인은 신규 지갑 수가 꾸준히 늘고, 한 번 구매한 홀더들이 팔지 않고 보유한다. 가짜 활동이 많은 코인은 지갑 수가 많아 보여도 실제로 코인을 보유하는 지갑은 소수에 집중돼 있다.
■ 2025년에도 달라지지 않은 구조
코인게코에 따르면 2025년 CEX와 DEX를 합산한 현물 거래량은 약 18.6조 달러에 달했다. 이 중 얼마만큼이 실제 수요에 의한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규제 거래소들은 상대적으로 워시 트레이딩이 적지만, 비규제 거래소들의 허수 거래량이 전체 시장 통계를 왜곡한다.
2024년 한 해 동안 이더리움, BNB 체인, Base를 합산한 DEX에서 감지된 의심 워시 트레이딩 규모만 7억 400만 달러였다. 규제 당국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CFTC는 코인베이스에 워시 트레이딩을 이유로 6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2025년 상반기 SEC는 여러 건의 워시 트레이딩 집행 조치를 취했다.
■ 투자자가 봐야 할 진짜 숫자
그렇다면 투자자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거래량 숫자 하나만 볼 게 아니라 여러 지표를 교차 확인해야 한다.
온체인 데이터에서 실제 활성 지갑 수와 신규 지갑 유입 추세를 살펴야 한다. 거래소 거래량과 온체인 활동이 일치하는지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다. 거래량 대비 유동성 풀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면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종료됐을 때 거래량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핵심 단서다.
비규제 거래소 중 일부는 실제 거래량을 1.25배에서 최대 50배까지 부풀린 것으로 추정된다. 일 거래량 500억 원이라는 숫자가 실제로는 10억 원의 실수요를 의미할 수 있다.
크립토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다고 한다. 2025년 기관 자금이 유입되고, 현물 ETF가 승인되고, 규제 프레임워크가 갖춰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기초 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거래량 데이터의 신뢰성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화려한 숫자 뒤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는 습관, 지금 투자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