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는 26일 반도체주에 과도하게 쏠린 수급과 투자심리 급랭이 겹치면서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다시 드러냈다.
한국거래소와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519.09포인트(5.81%) 내린 8,411.21로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117.12포인트(1.31%) 하락한 8,813.18로 출발한 뒤 오전 10시 30분 전후부터 낙폭이 빠르게 커졌고, 장중 한때 8,126.84까지 밀리며 9.00% 하락하기도 했다. 하루 최고치와 최저치의 차이는 734.86포인트에 달했다. 코스닥도 약세를 보였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오전 매도 사이드카(선물 급변 시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 제한하는 장치)가 발동된 데 이어 오후에는 서킷브레이커(주가 급락 시 시장 전체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제도)가 작동해 20분간 매매가 멈췄다. 유가증권시장의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6월 23일 이후 3일 만이며, 역대 11번째다. 올해만 5차례 발동됐다.
이번 급락은 겉으로는 미국 반도체 업황 기대가 꺾인 데 따른 충격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내 시장 내부의 쏠림 구조가 변동성을 더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간밤 뉴욕 증시에서는 대형 기술주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고, 애플이 메모리 공급 부족에 따라 제품 가격을 올리고 차세대 칩 계획을 조정했다는 소식이 투자심리를 크게 흔들었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소비 둔화로 이어질 수 있고,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의 자본지출도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다. 다만 같은 날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4.15%, 대만 가권지수는 3.64% 하락하는 데 그쳤고, 중국과 홍콩 증시의 낙폭은 이보다 더 작았다. 한국 증시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컸다는 뜻이다.
배경으로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두 종목에 대한 시장 집중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점이 꼽힌다. 이날 장 마감 기준 두 종목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48%에 달했다. 최근 이들 종목은 하루 단위로 10% 안팎의 급등락을 반복했고, 주가 움직임을 두 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장지수펀드까지 더해지면서 변동성이 증폭됐다. 이날도 삼성전자는 5.30%, 에스케이하이닉스는 8.36% 하락했다. 시가총액은 각각 1천984조8천116억원, 1천905조534억원으로 내려와 나란히 2천조원 아래로 밀렸다. 외국인도 두 종목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삼성전자는 2조3천670억원 순매도로 코스피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종목이었고, 에스케이하이닉스도 2조3천430억원 매도 우위로 뒤를 이었다. 최근 2거래일 동안 코스피가 약 8.9% 반등하는 과정에서 반도체주만 유독 강하게 올랐던 만큼, 그 반작용이 한꺼번에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올해 국내 증시는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코스피는 6월 들어 19거래일 가운데 9거래일에서 종가 기준 4% 이상 움직였다. 이 가운데 3거래일은 하루 등락률이 8%를 넘었다. 6월 23일에는 910.71포인트 떨어지며 종가 기준 역대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고, 전날인 25일에는 미국 마이크론 실적 호조에 힘입어 5.42% 급등하며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그러나 하루 만에 다시 매도 사이드카가 걸렸다. 올해 사이드카 발동 횟수는 모두 29회로, 매도 14회와 매수 15회를 합친 수치다. 이는 연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으로, 종전 최고였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26회를 이미 넘어섰다. 이날 급락으로 코스피 시가총액은 6천885조3천822억원으로 줄어 하루 만에 425조원 넘게 증발했고, 7천조원 아래로 내려갔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 브이코스피(VKOSPI, 이른바 한국형 공포지수)도 최근 장중 97.78까지 치솟아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이날도 한때 94.04를 나타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정이 기업 실적 악화보다는 투자심리와 수급 불안에 더 크게 좌우됐다고 보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수요 감소 우려가 과도한 측면이 있으며, 이날 급락의 상당 부분은 쏠림 현상과 그에 따른 수급 변동성으로 설명된다고 진단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마이크론 호실적을 계기로 급등했던 대형 반도체주가 급락으로 돌아서면서 지수 약세를 이끌었고, 주도주가 흔들리자 위험자산 회피심리가 전 업종으로 번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증권 역시 최근의 주가 급변은 기초 체력보다는 심리 변화의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기업 이익 성장세 자체는 아직 비교적 견조하다는 점에서 이번 하락이 장기적인 추세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반도체주 수급과 외국인 매매 방향에 따라 출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쏠림이 완화되고 실적 기대가 유지된다면 시장은 점차 변동성 진정 국면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