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고급 이공계 인력 채용을 위한 H-1B 비자의 수수료를 연간 10만 달러(약 1억 4천만 원)로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내놓으면서, 해당 비자를 통해 미국에 진출해온 외국인 인재 유입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전략기술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한국은 오히려 인재 유치에 유리한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H-1B 비자는 미국 내에서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발급되는 취업 비자다. 매년 8만 5천 건으로 발급 수가 제한되고 있으며, 최초 3년 체류를 보장하며 연장과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 테슬라, 구글, 메타 등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들이 주로 이 제도를 통해 첨단 기술 인력을 영입해 왔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비자 요건 강화는 이들 기업의 인재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과학기술 예산의 축소와 맞물려 미국 내 고급 이공계 인력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실제로 미국은 자국민 고용 확대 요구와 예산 제약 문제로 인해 비자 제도까지 보수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각국은 미국에서 이탈하는 고급 인력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으며, 한국도 이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H-1B 비자 수혜자는 전체 대비 약 1% 수준이지만, 대부분 AI(인공지능), 바이오, 반도체 등 전략기술 분야의 인재들로 파악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미국으로 유출된 H-1B 인재는 총 2만 168명이며, 연평균 2천 명 수준이다. 정부는 이 같은 추세에 대응해 우수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이들을 국내로 다시 유치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인재 유치 프로젝트로는 ‘브레인 투 코리아’가 있다. 2030년까지 전략기술 분야에서 박사후연구원과 신진과학자 2천 명을 국내로 유치하고, 비자·주거·교육·취업 등을 망라한 정착 지원 시스템까지 전방위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뒷받침할 예산 사업으로는 이노코어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며, 해당 사업은 올해 박사후연구원 400명 유치와 함께 내년에는 1천 명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해외 인재 유입 확대가 곧바로 국내 인재 육성과 연계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KISTEP는 보고서를 통해 첨단 기술 분야의 해외 인재 유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국내 인재 양성과 처우 개선이 병행되어야 균형 잡힌 발전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 정책은 해외 인재에 대한 개방과 자국 인재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의 비자 정책이 추가로 경직될 경우,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의 첨단 산업 인력 확보 경쟁이 더욱 뜨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재 유치 전략이 단기적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과학기술 정책과 일자리 생태계 구축으로 연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