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 부상… 각국, 데이터 주권 전쟁 본격화

| 김민준 기자

AI 인프라 확장이 전 세계 디지털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핵심에는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각국이 자국 내부에서 컴퓨팅 역량과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확산 중이며, 기술적 혁신뿐 아니라 지정학적 배경에서도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기업들은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3단계의 여정 중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벌처(Vultr)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케빈 코크레인에 따르면, 지금은 생성형 AI 훈련을 위한 대형 모델 인프라를 구축하는 '0단계'로, 이 작업은 주로 북미와 유럽 등 핵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후 1단계는 기업들이 오픈소스 LLM(대형언어모델)을 활용해 실제 업무 최적화를 시작하는 시기로 본다. 마지막 2단계에서는 전 세계적 확산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세레브라스(Cerebras) 제품전략 수석 부사장 앤디 호크는 지역 기반 AI 인프라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한 챗봇을 넘은 추론 기반의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채택되고 있으며, 각국 정부는 AI가 가져올 경제적 전환력을 인지하고 자본과 인재 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와 언어, 현지 맥락 또한 글로벌 AI가 고려해야 할 필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네이티브리AI(NativelyAI) 회장 조셉 스펜스는 “기술적 자원은 풍부하지만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여력이 없는 국가들에서는 분산형 모델이 특히 중요하다”며 “분산 인프라가 분산 혁신을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중앙 집중형 클라우드 대신 각국 과학자와 개발자들이 직접 참여해 자국 환경에 맞춰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다.

데이터 주권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수요 또한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들이 현지 법률을 준수하는 국지형 멀티클라우드 전략으로 옮겨가게 만들고 있다. 휴메인(HUMAIN) 제품책임자 셰람 자말은 "소버린 AI는 데이터, 프라이버시, 제어권을 각국이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도 이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적 정체성과 언어 다양성 보존 역시 중요한 이슈다. AI가 공정하고 보편적인 도구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각 사회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반영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 인프라 측면에서는 벡터 데이터베이스,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 등 새로운 툴들과 오픈소스 프레임워크가 빠르게 등장하며 복잡해진 AI 워크플로우를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시작된 디지털 주권 강화 움직임은 이제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있다. 미국 내부뿐 아니라 중동, 동남아, 유럽에서도 소버린 AI 의제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빅테크의 집중 구조와 경쟁하는 새로운 AI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AI가 일자리 대체보다 더 많은 창업 기회와 디지털 리더 양성을 가져올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교육기관과 정부가 협력해 인재를 양성하고, 분산형 AI 인프라가 새로운 고용과 혁신의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도 주목된다. AI 시대의 본격적인 확산은 기술이 아닌 문화와 거버넌스, 인재 육성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