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기술이 빠르게 일상에 스며들면서, 우리는 유토피아와 파국 사이의 복잡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오픈AI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Sam Altman)은 최근 한 블로그 글에서 '조용한 특이점'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AI가 인간의 삶을 급격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기처럼 점진적으로 스며들어 풍요로움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올트먼은 2027년까지 로봇이 실질적인 노동을 수행하고, 과학 발전이 빨라지며 인간 사회가 건전한 통제와 선의의 리더십 아래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공상과학 작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소설 '더 퍼리퍼럴(The Peripheral)'에서 기술 진보가 기후 재난, 팬데믹, 경제 붕괴 등 일련의 위기 후에야 나타난다고 경고했다. 즉, 문제는 기술의 발전 여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회가 온전할 수 있느냐다. AI가 인류를 구제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은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단지 희망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오늘날의 현실은 두 극단 사이의 '불확실한 중간지대'에 있다. AI는 분명히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로 인한 일자리 자동화는 이미 많은 이들의 생활을 흔들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은 향후 5년 내 백색직군 상당수가 자동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고용 시장은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기술적 진보가 인간의 의미와 소속감을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직업만이 아니라, 지식과 신뢰, 공동체 인식의 재구성까지 포함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사고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반이 되는 '인지 커먼즈(cognitive commons)'가 흔들리고 있다. AI는 개인화된 정보 전달과 알고리즘 기반 추천을 통해 공통 현실을 분열시키고 있다. 같은 질문을 두 사람이 챗봇에게 던졌을 때 서로 다른 답을 받는 일이 흔해지면서, 공유된 진실의 개념 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이와 관련해 AI의 가장 큰 위협이 '정서적 조작'에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공감을 가장한 서사로 인간의 감정과 사고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그것은 단순한 편향이 아닌, 민주주의와 사회 신뢰의 기초를 흔드는 일이 된다. 정보 검증의 책임이 플랫폼에서 개인으로 넘어갈 때, 공유된 지식 생태계는 점점 더 불투명하고 불신의 대상으로 변질될 수 있다.
AI가 강화하는 개인화는 소비재나 오락에서는 유용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시민 생활 전반에 적용될 경우 공동체 단위의 사고 구조가 해체될 위험이 크다. 민주적 담론과 제도적 판단은 여전히 공동의 사실 기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AI가 생성하는 텍스트·음성·영상 콘텐츠가 인간의 그것과 구별되지 않게 되면, 사실 검증의 기준점이 사라지며 정보 오염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러한 난제는 전적으로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선거, 언론, 분쟁 상황 등에서 AI 기반 허위 정보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AI에 지식 정리를 의존하면서 사고의 주체성이 약화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막으려면, 알고리즘 중심이 아닌 다양성을 고려한 시스템 디자인, 투명성과 공공성에 우선한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더 이상 하나의 공유 지식 생태계가 아닌, 취향과 신념별로 모인 '인지 군도(cognitive archipelagos)'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각기 다른 집단이 자신만의 사실과 진실을 중심으로 조직되면서, 사회는 점점 더 분열될 수 있다. AI는 이 과정을 가속화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집단 결속을 더 정교하게 촉진할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기술이 사회적 마찰을 통해 발전하는 다양성 대신, 거품 닿지 않는 고립된 세계만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중심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 앞에 남은 과제는 분절된 현실과 어떻게 인간적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단순한 솔루션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질문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AI를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이는 단순한 발전의 추종자가 아니라, 의미의 설계자로서 다시금 자리를 잡는 과정이 돼야 한다.
남은 길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중간지대'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우리가 공동의 삶을 지킬 수 있는지는 기술이 아니라 통찰력과 공동체 의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AI가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수록, 우리는 더 신중하게 그 사이 공간을 가꿔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통제하는 길은 아닐지라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