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자본시장의 ‘토큰화’에 대해 신중한 청사진을 내놨다. 기술이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결제의 기준은 여전히 중앙은행 자금이어야 하며 규제와 인프라도 함께 정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3일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ECB는 최신 ‘거시건전성 회보’에서 분산원장기술(DLT)이 유럽연합(EU)의 저축·투자 연합을 더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상호운용 가능한 인프라와 ‘강력하고 지원적인’ 규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대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짚었다.
ECB는 토큰화와 DLT가 이제 개념 단계를 넘어 초기 대규모 도입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봤다. 동시에 안전한 확산을 위해서는 정책 대응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혁신은 열어두되 통제는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회보에 실린 한 글은 토큰화 자산이 발행부터 결제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러 중개기관과 기존 시스템에 의존하던 절차를 단순화해 운영비용을 줄이고, 자산 이동과 기업행위 처리도 자동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효율성은 전제 조건이 붙는다. 서로 호환되지 않는 플랫폼이 난립하면 오히려 시장이 더 복잡해질 수 있고, 토큰화 시장의 결제수단 역시 민간 발행 토큰이 아니라 중앙은행 자금이어야 한다는 점을 ECB는 분명히 했다. 시장 안정성과 결제 최종성에 대한 우려를 먼저 차단한 셈이다.
또 다른 글에서는 토큰화 채권 시장의 초기 사례를 분석하며, 전통적 방식보다 차입비용이 낮고 매수·매도 호가 차이도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운영 효율과 결제·담보 관리의 투명성, 프로그래밍 가능성이 그 배경으로 꼽혔다. 다만 기술·법률·유동성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어, 대형 특판과 일부 발행사를 넘어 시장이 확대될 때도 이런 장점이 유지되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ECB는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와 유로 표시 스테이블코인도 함께 들여다봤다. 두 상품을 온체인 기반의 ‘현금성 자산’ 실험으로 본 것이다.
회보는 토큰화 MMF가 기존 상품의 유동성 위험과 환매 압박을 상당 부분 그대로 안고 가면서, 여기에 운영상 취약점까지 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사한 구조가 위기 국면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아직 충분한 검증이 없다는 의미다.
유럽연합의 가상자산시장법(MiCA)을 준수하는 유로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다. ECB는 이들 상품이 국채 수요를 바꾸거나 위기 때는 유동성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준비금과 예치 구조에 따라서는 은행권으로의 충격 통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이번 판단을 종합하면 ECB의 방향은 분명하다. 토큰화는 유럽의 통합 자본시장 구상에 힘을 보탤 수 있지만, 인프라·규제·중앙은행 결제가 같은 속도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효율성보다 금융안정이 우선이라는 기존 기조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