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과 연체가 최근 빠르게 늘어나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한 중소기업과 여유 자금이 쌓인 대기업 사이의 격차가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4월 말 전체 원화대출 고정이하여신 비율 단순 평균은 0.42%로 집계됐다. 고정이하여신은 통상 3개월 이상 연체돼 사실상 부실 위험이 큰 여신을 뜻하는데, 3월 말 0.38%에서 0.04%포인트 올랐고 지난해 4월 말 0.40%, 지난해 말 0.34%와 비교해도 상승 흐름이 이어졌다. 차주별로 보면 가계는 0.26%, 대기업은 0.31%, 중소기업은 0.63%, 전체 기업은 0.54%였다. 특히 중소기업 비율은 한 달 새 0.09%포인트 올라 대기업의 두 배를 넘겼다. 금리 부담과 내수 부진에 민감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중소기업 대출 통계에 함께 잡힌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장의 상환 부담이 숫자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개별 은행에서도 중소기업 쪽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A은행의 중소기업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3월 말 0.49%에서 4월 말 0.66%로 0.17%포인트 급등했다. 은행 측은 특정 중소기업이 거액의 여신을 연체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B은행의 전체 기업 고정이하여신 비율도 0.50%로 한 달 전보다 0.07%포인트 올라, 코로나19 시기였던 2020년 11월 이후 5년 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은행에서도 대기업은 0.27%에서 0.28%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지만, 중소기업은 0.54%에서 0.64%로 0.10%포인트 상승해 전체 지표를 끌어올렸다. 경영난을 겪은 중소업체 한 곳의 수백억원대 여신이 부실 처리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C은행에서는 가계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0.39%로 2016년 5월 이후 가장 높아져, 취약 차주의 부담이 기업 대출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연체율 흐름도 비슷했다. 5대 은행의 4월 말 전체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은 평균 0.44%로 3월 말 0.41%보다 0.03%포인트 올랐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0.58%에서 0.65%로 0.07%포인트 상승한 반면, 대기업 연체율은 0.11%에서 0.08%로 0.03%포인트 내려 중소기업의 8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가계 연체율도 0.32%에서 0.33%로 소폭 상승했다. 시중은행들은 시장금리 상승으로 차주의 이자 부담이 커졌고, 특히 여러 금융회사에서 동시에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겉으로는 전체 은행권 건전성이 아직 급격히 흔들리는 단계는 아니지만, 취약 부문부터 균열이 커지는 전형적인 신호로 읽힌다.
반면 대기업 자금 사정은 오히려 개선된 모습이다. 5대 은행의 5월 14일 기준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잔액은 157조8천659억원으로, 사상 처음 150조원을 넘어섰다. 4월 말 142조4천324억원과 비교하면 보름 남짓한 기간에 15조4천335억원이 늘었다. MMDA는 입출금이 자유롭고 일반 요구불예금보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아, 기업들이 단기 여유 자금을 잠시 맡겨두는 용도로 많이 쓰는 상품이다. 은행권에서는 올해 들어 반도체 수출 호조로 현금 흐름이 좋아진 일부 수출 대기업들이 큰 규모의 자금을 MMDA에 넣은 영향이 컸다고 설명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런 예금이 금융채나 정기예금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이어서 수익성 방어에도 도움이 된다.
결국 지금의 은행권 지표는 같은 경제 환경 안에서도 기업 규모와 업종에 따라 체감 경기가 얼마나 다르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대기업은 수출 호조를 발판으로 유동성을 쌓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높은 금리와 둔화한 경기 속에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경로, 내수 회복 속도, 정책금융 지원 여부에 따라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취약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중심의 부실이 계속 누적되면 은행 건전성 관리뿐 아니라 실물경제 전반의 양극화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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