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보다 월세’…게이머들, GPU 대신 클라우드로 눈 돌린다

| 김민준 기자

PC 게이머 10명 중 4명이 최신 GPU(그래픽카드) 업그레이드를 포기하고 대신 월세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미엄 호스팅 및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리퀴드웹(Liquid Web)이 미국 소재 PC 게이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 보고서는 급등하는 GPU 가격과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게이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전체 응답자의 43%는 GPU 업그레이드를 미루거나 취소한 이유로 월세 또는 생활비를 꼽았다. 또 57%는 가격 급등이나 암표상(스캐핑) 때문에 최신 그래픽카드 구매를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GPU 업그레이드의 경제적 부담이 게이머들의 결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500달러(약 72만 원)를 초과하여 지불하겠다는 응답자는 25%에 불과했다.

이처럼 실속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클라우드 게이밍과 AI 업스케일링 기술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리퀴드웹에 따르면 응답자의 42%는 클라우드 또는 AI 기술이 현재 GPU 수준의 성능을 제공할 수 있다면 업그레이드를 완전히 건너뛰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연 시간이 사라진다면 62%가 클라우드 게임으로 전환하겠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클라우드(Xbox Cloud Gaming)나 엔비디아(NVDA)의 지포스 나우(GeForce Now) 등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이들도 36%에 달했다. 특히 밀레니얼과 Z세대에서 이러한 인식 변화는 더 두드러졌다. Z세대의 21%는 고성능 GPU가 향후 3년 이내에 불필요해질 것이라 응답했으며, 4K 해상도나 울트라와이드 모니터 사용자 사이에서도 GPU에 대한 충성도보다 기술 변화에 기반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GPU 브랜드 충성도에도 균열이 생겼다. 응답자의 36%는 업그레이드 시 브랜드를 바꿨으며, 35%는 유튜버 등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의 리뷰가 특정 GPU 브랜드를 피하게 만든다고 답했다. 심지어 23%는 기업의 사회적 논란이나 비즈니스 결정 때문에 브랜드 지지를 철회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GPU 교체 주기도 길어지고 있다. 응답자의 39%는 업그레이드를 1~2년 뒤로 미루겠다고 했고, 37%는 현재 GPU가 고장 나지 않는 한 새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중고나 구형 제품을 선택한 비율도 45%에 달했다. 게이머들은 이제 '가성비'와 '안정성', '혁신'을 브랜드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리퀴드웹 제품 매니저 브룩 오츠(Brooke Oates)는 “게이머는 실용적이다. 가치와 신뢰, 혁신이 브랜드 충성도보다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클라우드 게임과 AI 솔루션을 수용하는 유연성 덕분에 기술기업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그래픽카드에서 과대평가된 기능으로는 8K 게이밍(47%), 레이트레이싱(17%), 프레임 생성(11%)이 지목됐다. 이런 흐름은 고사양보다 활용 친화성을 택하는 게임 환경의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로블록스, 마인크래프트, 포트나이트처럼 그래픽은 평이하지만 수백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게임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 GPU 제조사들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 접근성, 클라우드 서비스 연동, 중고 트레이드인 프로그램 도입 등 실질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리퀴드웹은 “가치 중심의 혁신을 중심에 둔 기업이 차별화될 것”이라며 “이제 소비자들은 사양과 브랜드 명성보다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술을 선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