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중도해지 16.5%, 노후자금 잠금장치 되나

| 정민석 기자

노후 준비를 미루는 행동은 의지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행동경제학 논의가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중도해지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핵심은 사람이 ‘미래의 나’를 지금의 나와 가까운 존재가 아니라 사실상 다른 사람처럼 받아들이는 인지적 거리다.

한국경제는 5일 연금저축의 중도해지 불이익을 노후자금을 지키는 ‘오디세우스 약정’으로 설명했다. 오디세우스 약정은 유혹이 닥쳤을 때 선택지를 미리 좁혀 장기 목표를 지키는 장치를 뜻한다.

이 표현은 그리스 서사 속 오디세우스 일화에서 나왔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도 배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게 했고,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미래의 충동을 예상해 현재 시점에서 제약을 거는 장치로 설명한다.

할 허시필드(Hal Hershfield)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는 이 논의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UCLA는 허시필드 교수가 장기 의사결정과 은퇴 준비를 연구해 왔으며, 사람들이 미래의 자신을 더 구체적으로 떠올릴수록 장기 재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경제 원문은 허시필드 교수의 실험을 인용해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떠올릴 때 뇌 반응이 다르게 나타났고, 10년 뒤 자신을 생각할 때의 반응이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와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와 분리해 인식할수록 장기 저축의 심리적 동기는 약해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UCLA 뉴스룸도 실험 참가자가 나이 든 자기 얼굴을 본 뒤 장기 저축 계좌에 더 많은 돈을 배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막연한 노후를 구체적인 자기 모습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독자에게 이 논점은 연금저축과 IRP의 중도해지 문제로 연결된다. 금융감독원 보도참고 자료에 따르면, IRP와 연금저축에서 세액공제를 받은 금액을 중도인출하거나 해지하면 원칙적으로 납입 적립금과 운용수익에 기타소득세 16.5%가 부과된다.

다만 모든 중도인출에 같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요양, 개인회생, 파산, 천재지변, 사망, 해외이주 등 소득세법상 부득이한 인출에 해당하면 연금소득세 3.3~5.5%가 적용될 수 있다.

이 불이익은 가입자에게 분명한 비용이다. 동시에 단기 소비 유혹을 낮추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쉽게 깰 수 있는 계좌는 급한 지출 앞에서 먼저 흔들리지만, 해지 비용이 분명한 계좌는 당장의 선택을 늦추게 한다.

오디세우스 약정이라는 비유도 이 지점에 놓인다. 연금계좌의 세제상 불이익은 가입자가 노후자금을 쉽게 빼 쓰지 못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마찰이고, 이 마찰이 장기 저축을 지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중도해지 불이익이 모든 가입자에게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긴급자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연금계좌의 잠금 효과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연금저축과 IRP는 세액공제, 과세이연, 연금 수령 시 세율이라는 장점과 중도해지 비용을 함께 따져야 하는 상품이다.

통상 장기 금융상품은 혜택과 제약이 한 쌍으로 설계된다. 세제 혜택은 장기 보유를 유도하고, 중도해지 비용은 단기 인출을 억제한다. 가입자가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액공제만 보고 가입했다가 현금이 필요할 때 예상보다 큰 비용을 마주할 수 있다.

허시필드 교수의 연구가 말하는 처방은 복잡하지 않다. 먼 미래를 추상적인 숫자로만 두지 않고, 실제 삶의 연장선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연금저축과 IRP의 구조는 이런 심리적 약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장치로 읽힐 수 있다.

결국 판단의 기준은 상품 자체가 아니라 가입자의 소득, 유동성, 세제 적용 조건이다. 연금계좌는 노후자금을 지키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긴급자금까지 묶어두는 방식으로 운용하면 같은 장치가 부담으로 바뀔 수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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