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래소의 프라이버시 섹터 재개방을 둘러싼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 흐름은 전면적 허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엑시리스트(Exilist)는 최근 리서치를 통해 업비트와 빗썸의 바운드리스(ZKC), 아즈텍(AZTEC), 자마(ZAMA) 상장은 ‘프라이버시 코인’ 복귀라기보다 거래소가 통제 가능한 범위의 프라이버시 인프라를 제한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핵심은 프라이버시 자체가 아니라, 규제 준수와 추적 가능성 안에서 유통될 수 있느냐에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분석의 출발점은 2019년 9월 업비트의 상장폐지 결정이다. 당시 업비트는 모네로(XMR), 대시(DASH), 지캐시(ZEC), 헤이븐(XHV), 비트튜브(TUBE), 피벡스(PIVX)를 유의종목으로 지정한 뒤 거래지원을 종료했다. 거래소 측 논리는 자금세탁방지 원칙과의 충돌이었다. 프라이버시 기능으로 인해 송금인과 수취인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고, 이후 국내에서는 디지털 자산의 익명성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2025년 9월 바운드리스(ZKC)가 업비트와 빗썸 원화마켓에 다시 등장한 데 이어, 2026년 2월 아즈텍(AZTEC), 2026년 4월 자마(ZAMA)까지 국내 주요 거래소에 상장되면서 시장의 해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프라이버시 섹터에 대한 문이 다시 열린 듯 보이지만, 엑시리스트(Exilist)는 이를 ‘완전한 익명 자산의 복권’으로 읽는 것은 과도하다고 짚었다.
실제 상장 구조를 보면 이런 판단은 더 분명해진다. 업비트와 빗썸이 지원한 ZKC, AZTEC, ZAMA의 입출금 네트워크는 모두 이더리움(Ethereum) 기반이다. 거래소 공지에서도 해당 자산은 이더리움 네트워크만 지원된다고 명시됐다. 이는 거래소 바깥에서 각 프로젝트가 어떤 프라이버시 기능이나 기밀 연산 기술을 구현하더라도, 거래소 경계에서 이동하는 자산은 여전히 KYC가 연결된 계정과 지정 네트워크, 트래블룰 통제를 받는 ERC-20 계열 토큰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한국 거래소가 받아들인 것은 ‘완전한 익명성’이 아니라 ‘추적 가능한 형식으로 유통되는 프라이버시 관련 토큰’이다.
ZKC, AZTEC, ZAMA를 전통적 프라이버시 코인과 같은 선상에 두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운드리스(ZKC)는 영지식 증명 계산을 처리하는 네트워크 성격이 강하고, 토큰은 담보와 보상, 운영 기능에 가깝다. 아즈텍(AZTEC)은 이더리움 기반 프라이버시 중심 레이어2를 지향하고, 자마(ZAMA)는 기존 블록체인 위에 기밀 스마트계약 기능을 덧입히는 기술에 더 가깝다. 즉 이들은 자산 전송 자체를 익명화하는 메인넷 코인이라기보다 프라이버시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반면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모네로(XMR)와 지캐시(ZEC)는 결이 다르다. 두 자산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오랜 기간 거래량과 인지도를 유지해온 대표적 프라이버시 자산이지만, 규제 준수형 거래소 입장에서는 가장 다루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모네로(XMR)는 송금인, 수취인, 거래 금액이 기본적으로 감춰지는 설계가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익명성이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라는 점이다. 거래소는 입금 시점의 이용자 신원은 확인할 수 있어도, 자산이 거래소 밖의 모네로 체인으로 이동한 이후에는 일반적인 블록체인처럼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XMR은 프라이버시 기능이 있는 자산을 넘어, 체인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투명한 자산으로 받아들여진다.
지캐시(ZEC)는 기술적으로는 다소 다른 위치에 있다. 지캐시는 공개 주소와 비공개 주소를 모두 지원하며, 열람 키를 통해 특정 제3자에게 거래 내역을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지캐시를 ‘감사 가능한 프라이버시’ 혹은 ‘선택 공개형 프라이버시’로 해석해왔다. 기술 구조만 놓고 보면 모네로(XMR)보다 상대적으로 규제 친화적으로 보일 여지가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소 소유자가 공개를 허용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공개가 ‘가능하다’는 점과 거래소가 그 공개를 ‘항상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은 전혀 다른 문제다.
결국 거래소가 네이티브 지캐시 입출금을 재개하더라도, 사용자가 거래소 외부의 비공개 영역으로 자산을 이동시키는 순간 통제 범위는 크게 약해질 수 있다. 이 점에서 지캐시(ZEC)는 모네로(XMR)보다 현실적인 후보일 수는 있어도, 재상장 가능성을 높게 단정하기엔 아직 규제와 운영 측면의 장벽이 남아 있다. 표현을 엄밀히 하면 ‘모네로보다 가능성이 조금 더 있다’는 수준이 적절하다는 평가다.
이 같은 구분은 현재 규제 환경과도 맞물린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송금인과 수취인 정보를 함께 관리하도록 요구하는 기준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 금융정보분석원 역시 2026년 업무계획에서 가상자산 자금세탁방지 체계 강화와 거래 모니터링 고도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거래소가 프로토콜 내부에 존재하는 프라이버시 기능은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어도, 체인 레벨에서 자금 흐름을 강하게 가리는 네이티브 프라이버시 체인을 먼저 열 유인은 크지 않다. 규제 프레임과 상장 리스크를 감안하면, 프라이버시 코인보다는 프라이버시 기술 인프라가 먼저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흐름이 더 자연스럽다.
업비트의 상장 성향도 변수로 거론된다. 국내 시장에는 상장폐지 이후 다른 거래소를 통해 복귀한 사례가 존재하지만, 업비트는 대표적 재상장 흐름에 대체로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전례를 감안하면 모네로(XMR)나 지캐시(ZEC)의 복귀 가능성을 단순히 기술 구조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거래소의 내부 리스크 관리 원칙과 과거 상폐 자산에 대한 태도 역시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럼에도 향후 국내 프라이버시 내러티브의 ‘진짜 분기점’은 이미 상장된 ZKC, AZTEC, ZAMA가 아니라 지캐시(ZEC)와 모네로(XMR)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캐시가 다시 상장된다면 이는 선택 공개가 가능한 프라이버시를 제도권 거래소가 일정 부분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모네로가 재상장된다면 그 의미는 훨씬 크다. 체인 자체의 강한 익명성을 국내 규제형 거래소가 다시 받아들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후자보다 전자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거론될 뿐, 둘 다 아직은 불확실성이 크다.
종합하면 최근 한국 거래소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프라이버시 코인의 전면적 귀환이 아니다. 보다 정확히는 거래소 경계 안에서는 추적 가능성과 규제 준수를 유지하면서, 그 바깥 레이어에서 구현되는 프라이버시 기술과 기밀 연산 인프라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에 가깝다. 이 차이를 놓치면 ZKC, AZTEC, ZAMA 상장을 과대해석하게 된다. 반대로 이 차이를 정확히 읽으면 왜 모네로(XMR)와 지캐시(ZEC)가 아직 돌아오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지캐시가 상대적으로 먼저 거론되는 후보인지가 또렷해진다. 엑시리스트(Exilist)의 분석은 결국 국내 프라이버시 시장의 본질이 ‘허용 여부’가 아니라 ‘통제 가능성’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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