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왜 이토록 빨리 잊는가

| 권성민

2026년 4월 18일, 비트코인이 7만7천 달러를 넘어섰다. 전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제한적 개방안을 전격 제안했다. 오만 영해 쪽 남쪽 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은 자유롭게 통항할 수 있게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이 해협 개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는 "이달 말까지 합의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에너지 충격이 외교 협상 국면으로 전환되는 순간, 시장은 또다시 리프라이싱(Repricing)을 시작했다.

불과 1년 전을 떠올려 보면 격세지감이다.

2026년 3월 30일, 비트코인 공포·탐욕 지수는 8을 기록했다. FTX 붕괴 이후 최장인 59일 연속 '극단적 공포' 구간이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글로벌 증시를 뒤흔들었고, QQQ에서는 27년 만에 최대 규모인 120억 달러가 단 3개월 만에 빠져나갔다. 시장은 패닉셀링의 교과서적 장면을 연출했다. 그 공포의 한복판에서 저점을 잡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 트리거는 단 하나의 발표였다

2025년 4월 9일,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교역국에 대해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바꿨다. 그날 엔비디아는 18.72%, 테슬라는 22.69% 폭등했다. 애플은 15.33% 뛰며 시총 1위 자리를 탈환했다.

공포의 원인이 된 것도 트럼프였고, 공포를 해소한 것도 트럼프였다. 시장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빨리 반응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구조는 반복된다. 호르무즈 봉쇄가 에너지 충격을 만들었고, 개방 제안 하나가 그 프리미엄을 걷어냈다. 비트코인 역대 최고가는 2025년 10월에 기록한 126,198달러다. 현재 7만7천 달러는 그 고점 대비 약 39% 낮은 수준이다. 불장이라 부르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59일 연속 공포 구간의 바닥과 비교하면 이미 시장은 다른 세계에 와 있다.

■ 망각은 버그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잊어버리나"라는 질문은 틀린 질문이다. 시장은 잊은 게 아니다. 리프라이싱(Re-pricing)한 것이다.

시장이 공포를 가격에 담을 때, 그 공포는 이미 미래의 최악 시나리오를 현재 가격에 선반영한다. 관세 전쟁 본격화라는 공포가 QQQ 가격을 짓눌렀고, 유예 발표 한 마디에 그 공포 프리미엄이 일시에 증발했다. 호르무즈 봉쇄라는 에너지 충격이 단기물 금리를 밀어 올렸고, 개방 제안 하나에 그 인플레이션 프리미엄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망각이 아니라 정보 업데이트다. 시장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시장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그 정보 업데이트의 속도가 인간의 감정 회복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 있다. 시스테매틱 알고리즘은 감정이 없다. 뉴스 헤드라인을 파싱하고 0.001초 만에 매수 주문을 낸다. 반면 공포에 질려 팔았던 개인 투자자는 아직 뉴스를 읽고 있는 중이다.

■ 지금 시장을 움직이는 세 가지 힘

현재 반등을 설명하는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첫째, 시스테매틱 매수가 역대급이다. 골드만삭스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한 주간 글로벌 주식 시스테매틱(Systematic) 매수 규모는 역대 5위 안에 드는 860억 달러를 기록했다. 알고리즘이 먼저 움직였고, 사람이 뒤따르는 구도다.

둘째, 규제 환경이 바뀌고 있다. CLARITY Act 진전과 미국 증시 회복이 맞물리면 비트코인이 2026년 상반기 신고점을 경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찰스 슈왑의 개인투자자 대상 비트코인 현물 직접 거래 서비스 출시 발표도 같은 맥락이다. 제도권 금융의 문이 조금씩 더 열리고 있다.

셋째, 헤지펀드는 아직 포지션을 다 채우지 않았다. 골드만삭스 프라임 브로커리지 데이터에 따르면 기관의 크립토 익스포저는 여전히 역사적 평균을 밑돈다. 추격 매수 여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 그러나 속도 자체가 리스크다

빠른 반등에는 그림자가 있다. 옵션 시장에서 풋-콜 스큐가 붕괴되고 콜 스큐가 폭등하는 것은 투자자들이 '올라가는 것을 놓칠까봐' 패닉바잉에 나서고 있다는 신호다. 패닉셀링만큼이나 패닉바잉도 위험하다. 두 번 모두 이성이 아니라 두려움이 결정을 내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르무즈 개방 제안은 아직 조건부다. 이란은 미국의 전쟁 재발 방지 보장을 요구하며 공을 미국에 넘겼고, 2차 협상 장소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트럼프의 "4월 말 합의" 발언도 자신감의 표현이지 확약이 아니다. 시장은 최선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지만, 협상은 언제든 다시 결렬될 수 있다.

역대 최고가 12만6천 달러와 현재 7만7천 달러 사이의 간격은 여전히 크다. 그 간격이 기회인지 함정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결국 남는 질문

이 시대의 시장은 왜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가. 알고리즘 트레이딩, SNS 기반의 정보 전파, 24시간 돌아가는 암호화폐 시장, 그리고 정책 결정자의 즉흥적인 한 마디.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과거라면 몇 달에 걸쳐 일어났을 심리 사이클을 몇 주로 압축시키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감정의 속도와 정보의 속도 사이의 간격이 그 어느 때보다 벌어진 시대다. 그 간격에서 돈을 버는 사람과 잃는 사람이 갈린다.

1년 전 공포에 팔았던 사람과, 공포 속에서 샀던 사람. 오늘 비트코인 7만7천 달러 앞에서 두 사람의 표정은 다르다.

불장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장에서도 타는 사람은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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