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사무총장이 경고한 스테이블코인의 명암…"화폐의 미래인가, 금융 교란자인가"

| 권성민

국제결제은행(BIS)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사무총장이 지난 20일 일본은행 세미나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정리했다. 그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지 않다. 기회와 위협이 공존하며, 현재의 설계로는 진정한 화폐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3,150억 달러(2026년 4월 기준)다. 미국 은행 예금 잔액 8조 달러에 비하면 작지만, 최근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급락 속에서도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다. 연간 거래량은 35조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실물경제 결제에 쓰인 금액은 약 3,900억 달러로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온체인 트레이딩과 크립토 생태계 내부 거래에 집중돼 있다.

■ 핵심 개념: '화폐성(Moneyness)'의 부재

데 코스 사무총장이 집중 조명한 것은 '화폐성(moneyness)'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진정한 결제 수단으로 기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단일성(Singleness)이다. 서로 다른 금융기관에서 발행된 화폐가 액면 그대로 1:1로 교환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현재 2층 은행 시스템에서는 중앙은행 화폐를 통한 결제가 이를 보장한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 대차대조표를 통해 결제되지 않는다. Tether나 Circle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은 실제로 이차 시장에서 액면가와의 괴리가 발생한다. 신뢰 충격이 오면 그 괴리는 급격히 확대되고, 일부 이용자가 특정 스테이블코인 수취를 거부하는 사태가 현실화된다.

둘째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다. 이더리움 체인의 USDC와 솔라나 체인의 USDC는 본질적으로 상호운용되지 않는다. 블록체인 간 브리지(bridge)는 이 문제를 우회하려 하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리스크를 내포한다. 결과적으로 유동성과 자산이 여러 네트워크에 분산·파편화된다.

데 코스 사무총장은 이 두 가지 약점이 화폐의 핵심인 네트워크 효과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화폐의 사용이 수용을 낳고, 수용이 더 넓은 사용을 낳는다"는 선순환 구조가 현재 스테이블코인 설계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거시 금융에 미치는 5가지 충격

연설의 핵심부는 스테이블코인이 광범위하게 채택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거시·금융 충격 분석이다. 데 코스 사무총장은 다섯 가지 영역을 제시했다.

① 신용 공급 위축 가계와 기업이 은행 예금을 대규모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전하면, 은행들은 도매 자금 조달에 더 의존하게 된다.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불안정해질수록 대출 금리 상승과 신용 공급 감소로 이어진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은행 예금이나 국채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일부 완충이 가능하지만, 예금 분포 변화나 유동성 리스크는 개별 은행에 집중될 수 있다.

② 금융 안정성 위협 스테이블코인은 협의의 은행(narrow bank)과 유사하다. 예금을 수취해 안전 자산으로만 운용하는 구조다. 이는 뱅크런에는 강하지만, 위기 시 유동성을 탄력적으로 공급하는 분수 준비금 시스템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비은행 금융기관(NBFI)의 신용 공급 비중이 커질수록 경기순응성도 강화된다. 과거 NBFI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이 '최후의 시장 조성자'로 나서야 했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

③ 금융 무결성(Financial Integrity) 훼손 — 가장 심각한 위협 데 코스 사무총장이 "가장 심각한 우려"로 꼽은 것이 바로 이 영역이다. 퍼미션리스 퍼블릭 블록체인과 언호스티드(unhosted) 지갑을 통해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자금세탁방지(AML)·테러자금조달방지(CFT)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체인어낼리시스(Chainalysis) 2026년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이제 크립토 생태계 내 불법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추산했다.

④ 통화정책 약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신흥시장·개발도상국(EMDE)에서 광범위하게 쓰인다면, 해당국 통화정책은 심각하게 약화된다. 이는 역사적 달러라이제이션(dollarisation) 현상과 유사하지만, 자본통제 우회가 훨씬 용이하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최근 BIS 연구에 따르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의 대규모 자금 유입이 현지 통화 약세를 촉발하는 채널도 확인됐다.

⑤ 재정 정책 영향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미국 국채를 대거 매입하는 현상은 이미 가시화됐다. 이는 단기적으로 국채 수요를 늘려 차입 비용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이 현금을 대체하면 발행이익(시뇨리지)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이전된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특성상 탈세의 새로운 경로도 열린다.

■ BIS의 처방: 두 트랙 병행

데 코스 사무총장은 두 가지 방향의 정책 대응을 제시했다.

첫째,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리스크를 완화하는 기술적·규제적 해법 모색이다. 강력한 규제와 감독을 통한 액면가 상환 보장, 코인 보유자 보호 장치, 중앙은행 유동성 공급 접근(엄격한 요건 하), 효과적인 정리·회생 메커니즘 등이 이에 포함된다. 다만 그는 퍼블릭 블록체인에서의 유통이 내포하는 금융 무결성 문제나 블록체인 간 파편화는 규제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둘째,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적 장점을 기존 2층 금융 시스템에 통합하는 방향이다. 중앙은행들이 프라이빗·퍼미션드 플랫폼에서 토큰화 예금 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BIS가 제시한 '통합 원장(unified ledger)' 구상과, 일본은행을 포함한 여러 중앙은행이 민간과 협력 중인 '프로젝트 아고라(Project Agorá)'가 대표적인 사례다.

■ 한국 시장에 주는 시사점

일본의 규제 선진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2022년 자금결제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달러 연동 코인 대비 0.01%(1베이시스 포인트) 수준에 머무른다. 이는 정교한 규제 체계가 반드시 시장 성장으로 직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도 유사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규제 틀은 갖춰졌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USDT는 어떤 주요 관할권의 스테이블코인 법규도 준수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는 혁신 친화적 규제 틀조차 규제 경계 밖에서의 거래 가능성에 의해 무력화될 수 있다는 데 코스 사무총장의 경고와 정확히 일치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원화 통화 주권에 어느 정도의 위협이 되는지,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의 선제적 분석과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 중앙은행의 신뢰 앵커는 불가결

데 코스 사무총장은 연설 말미에 근본 원칙을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에 대한 신뢰를 차용하려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화폐의 신뢰 앵커가 여전히 불가결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어떤 기술 혁신이 도래하더라도, "화폐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뢰 위에 번성하는 제도적 성취물"이라는 명제는 유효하다.

스테이블코인이 크립토 생태계를 넘어 실물경제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려면, 설계의 근본적 개선과 함께 중앙은행 화폐 체계와의 진지한 통합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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