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맺은 민간 원자력 협정을 의회 심사대로 넘기면서 원전 협력과 중동 외교가 한 의제로 묶였다. 의회는 회기 기준 90일 동안 협정을 검토할 수 있으며, 이 기간 상·하원이 공동 결의로 반대하지 않으면 협정은 별도 표결 없이 효력을 낼 수 있다.
AP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행정부 관계자 등을 인용해 해당 기밀 문서가 미국 원자력법에 따라 의회에 제출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협정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는 7월 22일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압둘아지즈 빈 살만(Prince Abdulaziz bin Salman) 사우디 에너지장관이 평화적 원자력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 협정은 미국 원자력법상 '123 협정'으로 불리는 민간 원자력 협력 틀이다.
123 협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원전 기술, 핵물질, 장비를 민간 목적으로 주고받기 전에 체결하는 기본 문서다. 통상 원전 수출과 핵 비확산 기준, 안전조치, 사찰 체계를 함께 다루기 때문에 상업 계약이면서도 외교·안보 성격이 강하다.
에너지부는 이번 협정이 미국 원전 기술 수출과 사우디 에너지 수요 대응, 핵 비확산 기준 강화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는 장기 에너지 전환과 전력 수요 대응 차원에서 민간 원자력 개발을 추진해 왔고, 미국 기업에는 대형 해외 원전 사업 참여 기회가 될 수 있다.
쟁점은 협정 내용보다 조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에 참여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이슬람권 국가의 외교·경제 관계 정상화를 이끈 틀이다.
사우디의 입장은 다르다. 사우디 외교부는 2025년 2월 성명에서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없이는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사우디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평화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해 왔다.
이 때문에 이번 협정은 에너지 협력 문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기업의 사우디 원전 사업 참여, 핵연료와 사찰 체계, 이스라엘 정상화, 팔레스타인 국가 문제까지 한꺼번에 의회 심사대에 올랐다.
협정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AP는 과거 123 협정은 일부 기밀 부속 문서를 제외하고 공개된 사례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전체 문서가 높은 수준의 기밀로 분류된 점이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의회에서는 핵 비확산 우려가 먼저 나왔다. 진 샤힌(Jeanne Shaheen)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8월 6일 성명에서 미국이 제공하는 핵물질과 기술, 장비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충분한지 의회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가 빠졌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산업계와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원전 공급망 관련 기대도 거론됐다. 다만 이번 협정은 문서 공개 범위와 의회 심사, 외교 조건이 먼저 확인돼야 하는 단계다. 관련 종목이나 우라늄 시장의 수혜를 단정하기에는 절차상 변수가 남아 있다.
국내 독자에게 이번 사안은 원전 공급망과 중동 지정학 리스크를 함께 보는 재료다. 미국은 최근 군 기지 전력 복원력 강화를 위해 마이크로리액터 도입을 추진하는 등 원전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사우디 협정은 이 흐름이 해외 원전 협력과 중동 외교로 확장되는 사례다.
이번 사안이 비트코인(BTC) 등 크립토 시장에 미칠 직접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중동 정세가 에너지 가격과 위험자산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간접 변수로 해석될 수 있다.
협정의 다음 절차는 의회 검토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정상화 조건과 사우디의 팔레스타인 국가 요구가 맞서는 만큼, 협정의 발효 여부는 회기 기준 90일 심사와 양국 외교 협의 결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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