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약 10조유로에 이르는 가계 저축을 역내 기업 투자로 연결하는 저축·투자연합(SIU) 추진에 속도를 낸다. 예금의 강제 이전이 아니라 시민의 자발적 투자 선택지를 넓혀 기업 성장과 자본시장 통합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8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기업운동(MEDEF) 연례행사 기조연설에서 “유럽에는 저축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저축은 게으르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 예금에 머문 자금을 유럽 기업에 연결하는 것이 SIU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관련 제안에 대해 연말까지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회원국의 합의가 어려울 경우 참여 의사가 있는 국가부터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내놨다.
SIU는 유럽 내 가계 저축과 자본시장을 연결해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는 정책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5년 3월 19일 SIU 전략을 채택하고 혁신·방산·에너지 전환 등에 필요한 자금을 역내에서 조달하는 틀을 제시했다.
집행위는 SIU가 제대로 작동하면 최대 4700억유로의 추가 투자를 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U 가계 금융자산의 약 70%가 은행 예금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정책 추진의 배경으로 제시됐다.
정책의 핵심은 예금의 강제 이동이 아니라 투자 선택지 확대다. 시민이 원할 경우 은행 예금 일부를 자본시장 상품이나 장기 투자 수단에 배분할 수 있도록 금융상품과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는 방식이다.
예금자 보호 체계는 별도로 유지된다. 유럽연합의 예금자보호 규정은 은행이 파산할 경우 예금자 1인당 1개 은행 기준 최대 10만유로까지 예금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SIU를 예금 몰수나 강제 이전 정책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집행위 공식 자료도 시민의 선택권과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예금자 보호 기준을 변경하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유럽이 저축 동원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기업의 성장 자금 부족과 금융시장 분절 문제가 있다. 집행위는 유럽 기업이 초기 창업에는 성공하더라도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역외 시장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경쟁력 보고서는 2030년까지 유럽에 연간 7500억~8000억유로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 수치는 SIU가 끌어내려는 최대 4700억유로와 기준 문서와 산정 목적이 다른 별도의 투자 필요액이다.
SIU는 이미 단계별 실행표를 갖고 있다. 2025년 3분기 금융문해 전략과 저축·투자계좌(SIAs) 설계, 2025년 4분기 시장 통합·감독 패키지, 2026년 은행 부문 조치가 예정된 일정에 포함됐다.
2025년 12월 공개된 금융시장 통합·감독 패키지에는 분산원장기술(DLT) 활용 규제 완화와 일부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업체에 대한 유럽증권시장청(ESMA)의 직접 감독 확대가 포함됐다. 다만 SIU가 곧바로 토큰 시장 수요나 특정 가상자산 가격으로 이어진다고 볼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가상자산과의 연결고리는 금융시장 인프라 차원에 머문다. SIU 자체는 가계 저축을 기업 투자로 연결하는 정책이며, DLT와 가상자산 서비스업체 감독 개편은 별도 금융시장 통합 조치에 포함된 내용이다.
산업계는 기업 투자에 필요한 예측 가능성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MEDEF는 행사에서 기업 투자에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재정·사회적 틀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고, 프랑스 화물운송업계 단체 FNTR은 규제의 과잉 적용에 대한 비판에 박수가 나왔다고 전했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SIU를 유럽연합의 예금 몰수 정책으로 오해하는 주장이 확산됐다. 유럽의 팩트체크·허위정보 대응 기관들은 해당 해석이 정책의 선택권과 예금자 보호 조항을 배제한 주장이라고 정리했다.
SIU의 실제 성과는 회원국 간 합의와 후속 입법,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달려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27년 2분기에 SIU 중간 성과를 점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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