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의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도 이사직은 유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둘러싼 백악관과 연준의 충돌이 임기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파월 의장의 갈등은 금리 문제에서 본격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부양과 정부의 이자 부담 축소를 위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낮춰야 한다고 거듭 요구해 왔지만, 연준은 물가 안정과 고용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에 즉각 호응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 기준금리는 4.25∼4.50%였고, 연준은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한동안 고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파월 의장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다섯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금리 인하 압박 수위를 높였다.
갈등은 통화정책을 넘어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 문제로 번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워싱턴 DC의 연준 청사 개보수 공사 현장을 직접 찾았고, 이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연준의 독립성을 의식해 자제해 왔던 행동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어 측근인 스티븐 마이런을 연준 이사로 임명하고, 같은 달 리사 쿡 연준 이사에게 해임을 통보한 일도 큰 논란을 낳았다. 백악관과 가까운 인사를 연준에 들이는 동시에 기존 이사를 사실상 축출하려 한 조치로 비치면서, 시장과 법조계에서는 중앙은행이 정치권력의 영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올해 들어서는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을 둘러싼 수사가 파월 의장에게 직접 향하면서 충돌이 한층 격해졌다. 파월 의장은 1월 11일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받았다고 공개했고, 이를 두고 대통령의 금리 요구를 따르지 않은 연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연준 의장이 공개 성명을 통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비판한 것도, 연준 수장이 수사 대상이 된 것도 모두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이후 관련 수사는 후임 의장 인준과 맞물리며 일단 중단됐지만, 연준 내부에서는 사안이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파월 의장은 29일 종료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이번이 의장으로서 마지막 기자회견이라고 밝히며, 다음달 15일 의장 임기 종료 뒤에는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다만 그는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관련 수사가 투명하고 최종적으로 종결될 때까지는 이사회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연준 의장은 임기를 마치면 남은 이사 임기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경우가 많지만, 파월 의장은 최대 2028년 1월까지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수사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고, 형사 문제와 별도로 민사상 책임 추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번 사안은 한 인물의 거취를 넘어 미국 중앙은행이 정치권의 요구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후임 의장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연준 이사회 구성, 금리 결정 과정, 청사 개보수 수사의 처리 방향에 따라 백악관과 연준의 긴장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미국의 금리 정책뿐 아니라 금융시장 신뢰, 달러 가치, 국채시장 변동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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