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에이에스엠엘(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1대가 수출 통제를 우회해 중국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시 확산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 통신은 2026년 6월 19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최근 여러 회의에서 에이에스엠엘 고위 임원들에게 이런 우려를 직접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에 대한 EUV 노광장비 수출을 금지해 왔고, 네덜란드 정부도 이에 더해 구형 장비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대중국 판매까지 제한하고 있다. 노광장비는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 위에 새기는 설비로, EUV는 가장 미세한 첨단 공정에 필요한 핵심 장비다.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은 에이에스엠엘이 EUV 장비 관련 부품과 이송 장비를 중국에 수출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보 출처 보호를 이유로 구체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내 반도체 장비업체인 램리서치, 케이엘에이(KLA),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는 그동안 네덜란드와 일본의 수출 통제가 미국보다 느슨하다며 자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해 왔다. 이번 문제 제기는 단순한 규정 위반 의혹을 넘어, 동맹국 사이의 수출 규제 보조를 얼마나 촘촘히 맞출 것인가를 둘러싼 압박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에이에스엠엘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회사 측은 중국에 EUV 노광장비는 물론 EUV 전용 부품, 모듈, 장비를 수출한 적이 없다고 밝혔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EUV 노광장비 314대를 모두 추적 관리하고 있으며 중국 내 설치 장비는 1대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 EUV 장비는 스쿨버스 크기에 이를 정도로 크고, 이동 과정에서 자동 감지 체계가 작동해 회사의 개입 없이 반출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에이에스엠엘의 중국 매출 비중은 2024년 1∼2분기 49%까지 올랐다가 미국의 규제 강화 이후 계속 낮아져 2026년 1분기에는 19%로 떨어졌고, 회사는 올해 전체 중국 매출 비중도 20%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번 논란이 더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이 서방 장비에 의존하지 않는 첨단 반도체 생산 체계를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2025년 12월 에이에스엠엘 출신 엔지니어들이 중국에서 EUV 장비를 역설계해 시제품을 시험 중이며, 이르면 2028년 이를 활용한 칩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화웨이도 지난달 EUV 없이 독자적인 로직폴딩 기술로 2031년까지 1.4나노미터 칩 양산에 나서겠다고 밝힌 데 이어, 화웨이와 에스엠아이시(SMIC)가 레이저 유도 방전 플라즈마(LDP) 방식의 자체 EUV 개발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중국이 EUV 없이도 첨단칩 양산에 성공하면, 서방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는 핵심 지렛대를 잃을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미국의 대중국 통제 강화와 유럽 동맹국에 대한 공조 압박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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