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 주석 스타트업 엔코드(Encord)가 멀티모달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의 장벽을 낮추기 위한 이례적인 행보에 나섰다. 엔코드는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소스 멀티모달 데이터셋을 공개하고, 단일 GPU로 수시간 내에 강력한 멀티모달 AI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는 새로운 훈련 방식 'EBind'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번 공개는 AI 개발 자원이 부족한 중소 스타트업도 오픈AI, 구글(GOOGL), 메타(META), 앤스로픽(Anthropic) 같은 빅테크와 기술력 측면에서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엔코드가 제공하는 데이터 및 훈련 방식은 기존보다 데이터 품질을 중심으로 AI 성능을 극대화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어, 고가의 연산 자원이 필수였던 기존 트레이닝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평가다.

엔코드는 그동안 이미지, 텍스트, 오디오, 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라벨링하는 AI 기반 주석 플랫폼을 개발·운영해 왔다. 기존의 데이터 주석 작업이 대규모 인적 자원을 기반으로 수동 처리됐던 데 반해, 엔코드는 학습용 AI가 주석 작업을 수행하고 이 과정을 다른 AI가 감독하는 자동화 구조를 적용해 기업들이 훈련용 고품질 데이터를 보다 빠르게 구축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AI 기술의 핵심 분야로 부상한 멀티모달 AI는 텍스트만 처리하는 기존 챗봇이나 이미지에만 특화된 컴퓨터 비전 AI와 달리,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통합해 복합적인 판단과 추론이 가능한 차세대 기술이다. 엔코드 공동창업자 겸 CEO 에릭 랜도우(Eric Landau)는 이 기술이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등 실제 환경에서 다차원적 인식을 요구하는 시스템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불러올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나 멀티모달 AI의 대중화는 이에 필요한 데이터셋의 부족과 높은 연산 자원 요구로 그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EBind는 이런 구조적 병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결과물이다. 이 방식은 각 데이터 형식에 별도의 인코더를 사용하는 구조로 설계됐으며, 무엇보다 양보다 질 중심의 학습 전략을 채용해 고성능 모델을 소규모 환경에서도 구현할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엔코드는 18억 개 파라미터 규모의 모델을 단일 GPU에서 단 몇 시간 내에 학습시켜, 기존의 17배에 달하는 대형 모델들을 능가하는 성능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비록 이 결과는 아직 공식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사전에 접속권을 부여받은 영국 AI 스타트업 캡처(Captur)의 샬럿 백스 CEO는 “이 데이터셋은 다양한 산업별 상황에서 경계 사례 대응력을 높이는 데 큰 진전을 가능케 했다”고 평가했다.

엔코드의 공동창업자이자 사장인 율릭 스티그 한센(Ulrik Stig Hansen)도 향후 AI 혁신 경쟁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연산 자원’보다는 ‘데이터 퀄리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승자는 단순히 더 많은 컴퓨팅 파워를 투입하는 기업이 아니라, 더 우수한 데이터 큐레이션 전략을 도입하는 조직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번 조치는 멀티모달 AI의 대중적 확산에 상당한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AI 생태계 전반에서 기술 접근성 확보 차원에서의 '민주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엔코드의 행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