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유통 시가총액이 2026년 9월 3000억달러(약 410조원)를 넘어선 가운데, 블랙록은 AI 에이전트 결제와 컴퓨트 사용권 토큰화를 디지털자산의 새로운 수요처로 제시했다. 다만 관련 결제와 시장 유동성은 아직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블랙록 디지털자산 리서치는 23일 백서 'The Machine-Native Economy'에서 AI를 '기계 원생 지능', 디지털자산을 '기계 원생 화폐'로 규정했다. AI가 정보를 해석하고 행동을 지시한다면, 블록체인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자산과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 수단을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대규모 AI 도입이 디지털자산의 수요와 활용도를 키울 수 있는 '과소평가된 원천'이라고 밝혔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인간의 언어를 토큰과 숫자 벡터로 바꾸듯, 블록체인은 현금·펀드 지분·증권 등 자산과 권리를 디지털 토큰으로 표현한다는 설명이다.
◇ AI 에이전트 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
블랙록은 AI 에이전트의 거래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이 앞설 가능성을 거론했다. 24시간 작동하는 에이전트가 API 호출, 데이터 이용료, 컴퓨트 사용료를 고빈도·소액으로 결제하려면 계정 개설과 수동 승인이 필요한 기존 결제망보다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망이 적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블랙록은 코인베이스($COIN)가 개발한 x402도 주요 사례로 소개했다. x402는 HTTP 402 'Payment Required' 상태 코드를 기반으로 결제 요청, 서명, 검증, 온체인 정산을 처리하는 개방형 프로토콜이다.
코인베이스는 2025년 5월 x402를 공개했다. 이 방식은 계정이나 API 키 없이 웹 자원 이용료를 지불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AI 에이전트와 프로그램이 서비스 이용량에 따라 결제하는 구조를 지원한다.
클라우드플레어($NET)는 2025년 코인베이스와 x402 재단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초기 활용 사례로는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제시됐다.
블랙록은 2025년 조정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이 11조달러(약 1경5015조원)를 웃돌았다고 집계했다. 같은 기간 ACH를 통한 이체액 93조달러(약 12경6945조원)보다는 작지만, 2020~2025년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의 연평균성장률은 80%로 ACH의 약 8.5%를 웃돌았다.
다만 이 거래량은 내부거래·봇·고빈도 거래 등을 제외한 조정치다. 블랙록은 스테이블코인 거래량과 전통 결제망의 수치를 직접 비교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 컴퓨트 사용권도 토큰화 대상
블랙록은 AI에 필요한 컴퓨트 용량을 새로운 디지털자산 시장으로 제시했다. AWS, 마이크로소프트($MSFT)의 Intelligent Cloud, Google Cloud의 합산 매출은 2030년 약 1조1000억달러(약 150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2026년 8월 31일 기준 시장 추정치를 인용했다.
보고서는 컴퓨트 사용권을 토큰으로 표시하면 이전·담보 제공·프로그래밍 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 에이전트가 가격, 성능, 지연시간, 지역, 하드웨어 사양을 비교한 뒤 필요한 컴퓨트 용량을 자동으로 조달하고 사용량에 따라 정산하는 구조다.
칩 세대별 성능 차이와 지역별 전력비, 계약 용량의 현금결제 및 실제 인도 기준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컴퓨트 시장이 거래 가능한 표준 상품으로 발전하려면 계약과 유동성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스트라이프는 8월 19일 400개 이상 모델과 80개 이상 공급자의 모델을 연결하는 OpenRouter 인수 계약을 발표했다. 스트라이프는 토큰 비용과 컴퓨트 자원 배분 최적화를 인수 배경으로 설명했고, 블랙록은 이를 AI 컴퓨트 조달과 사용량 기반 과금,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가 결합되는 사례로 해석했다.
블랙록 디지털자산 리서치는 2026년 9월 백서에서 “AI 도입 확대와 에이전트 시스템의 고도화에 따라 디지털자산이 AI 경제 인프라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백서는 에이전트 결제와 컴퓨트 시장 유동성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명시했다.
블랙록이 인용한 비트코인 정책 연구소의 실험은 실제 에이전트의 행동이 아니라 36개 AI 모델을 대상으로 한 9072건의 통제 실험이다. 연구에서는 장기 가치 보존에는 비트코인(BTC), 일상 결제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상대적으로 선호됐다.
이 연구 결과는 AI 시스템이 특정 자산을 실제 경제활동에서 선택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통제된 조건에서 나타난 모델의 응답을 보여준다. 블랙록도 AI 에이전트 결제와 컴퓨트 토큰화가 실제 대규모 시장으로 자리 잡으려면 표준화와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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